"귀족 그만둡니다, 서민이 되겠습니다/71. 심부름"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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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더워. 피부 그을리겠어"
 
"아~ 더워. 피부 그을리겠어"
  
오늘 나는 가지색 옷은 입었지만 가발을 쓰고서 외출하기에는 너무 더웠기에 가발을 쓰지 않고 머리카락을 완자처럼 하나로 뭉쳤다. 습기가 낮은 나라라곤 하나 의외로 가발은 퍼진다. 방 밖은 힘들다. 손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나는 손에 든 베낀 지도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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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는 가지색 옷은 입었지만 가발을 쓰고서 외출하기에는 너무 더웠기에 가발을 쓰지 않고 머리카락을 완자처럼 하나로 뭉쳤다. 습기가 낮은 나라라곤 하나 의외로 가발은 퍼진다. 방 밖은 힘들다. 손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나는 손에 든 지도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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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트님이 직접 그린 지도로 오늘 심부름은 왕도 제 2지구에 있는 요즘 화제인 과자 가게에서 마드렌을 사오는 것이다. 루덴스 저하는 그렇다 치고 그 사람, 단 것을 좋아하는 지는 몰랐지만 '유행하는 것을 체크해 두는 거야'라더라. 그리고 어째선지 어느 어느 길로 통해 가랬다. 거리를 빙빙 돌아 다리를 세 개 넘어야만 갈 수 있는 것같다. 치안이 좋다는 제 2지구였지만 나름 거리가 있는데 혼자서 걸는 것에 뭔가 의미가 있는 게 분명한 것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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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심을 말하면 내가 하는 왕도 거리는 극히 일부니까 남의 눈치 보지 않고 거리를 걸을 수 있는 심부름은 아주 기쁘다. 단지 말이지, 종자가 있는 분들이 어째서 나를 쓰는 걸까… 난 사무직원이 아니었던 건지? 제 2지구는 가게가 많아서 걷는 게 즐겁다. 내가 가는 과자 가게는 왕도에서 가장 붐비는 메인 스트리트에 있다. 왕립 도서관까지 마차로 가서 걷는 것이 메인 스트리트로 가는 가장 지름길이라는 건 나도 안다. 그런데 평민이 많이 사는 하층 지구의 다리를 두 개 건너 빙글 상층 지구로 들어가는 길을 이용하겠끔, 지도에 지시되어 있는 건 어째서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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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심부름할 때는 목적지에 쭉 직진할 뿐이었는데… 멀리 빙 돌아가는 것은 괴롭히려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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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이 나는 왕립 도서관의 마차 정차장에서 메인스트리트와 반대 방향으로 향해 걸어갔다.

2019년 1월 16일 (수) 16:55 판

어떠한 것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소름이 끼치는 것이어서 싫다, 싫다, 노래부르던 그럭저럭 왕궁에서 생활하고 있다. 관사에 거주하며 주변 정리는 스스로 하고 생활비 걱정도 없다.

확실히 복받은 생활이라고 말할 수 있지. 한 인간으로서 대접받고 있다. 하찮게 대하지도 않는다. 레디 앤로서 왕궁 안을 돌아다니면 다소 불쾌감이 섞인 말이나 불만을 듣기도 하는데 루덴스 저하 아래서 일하는 게 대체로 알려져 있으니까다. 그래도 업무 내용은 루덴스 저하와 그 친구들이 메모한 것에서 관련사항을 찾아 정리하여 하나의 사안으로 만드는 꽤 어려운 레벨로 올라 일하는 맛 또한 늘었다.

귀족 중 귀족인 고귀한 분들 옆에 있으며 서민에 가까운 귀족인 내가 실수를 하지 않을까 스스로도 움찔움찔거렸지만 의외로 어찌하고 있다. 내 능력이 예상 이상으로 뛰어난 것인지 고귀한 분들이 관대한 것인지 모르겠다. 왕도에 있지 않는 귀족 아씨로 되어 있으니까 본래 집의 굴레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는 것은 고마웠고 솔직하게 서민이 되지 않아도 자립하여 생활한다는 목적은 달성되었다. 으~음… 언제 끝나는 지는 정해져 있지만.

◇◇◇

레디 앤과 아샤마리아와 아샤 3인을 연기하는 나를 아는 루덴스 저하는 왕도에 심부름을 보내게 되었다. 로베르트님이나 란셀님, 거기다 레이야드님까지… 모두들 자기 종자를 쓰라고요~ 뿡뿡.

"아~ 더워. 피부 그을리겠어"

오늘 나는 가지색 옷은 입었지만 가발을 쓰고서 외출하기에는 너무 더웠기에 가발을 쓰지 않고 머리카락을 완자처럼 하나로 뭉쳤다. 습기가 낮은 나라라곤 하나 의외로 가발은 퍼진다. 방 밖은 힘들다. 손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나는 손에 든 지도를 바라봤다.

로베르트님이 직접 그린 지도로 오늘 심부름은 왕도 제 2지구에 있는 요즘 화제인 과자 가게에서 마드렌을 사오는 것이다. 루덴스 저하는 그렇다 치고 그 사람, 단 것을 좋아하는 지는 몰랐지만 '유행하는 것을 체크해 두는 거야'라더라. 그리고 어째선지 어느 어느 길로 통해 가랬다. 거리를 빙빙 돌아 다리를 세 개 넘어야만 갈 수 있는 것같다. 치안이 좋다는 제 2지구였지만 나름 거리가 있는데 혼자서 걸는 것에 뭔가 의미가 있는 게 분명한 것같은데.

본심을 말하면 내가 하는 왕도 거리는 극히 일부니까 남의 눈치 보지 않고 거리를 걸을 수 있는 심부름은 아주 기쁘다. 단지 말이지, 종자가 있는 분들이 어째서 나를 쓰는 걸까… 난 사무직원이 아니었던 건지? 제 2지구는 가게가 많아서 걷는 게 즐겁다. 내가 가는 과자 가게는 왕도에서 가장 붐비는 메인 스트리트에 있다. 왕립 도서관까지 마차로 가서 걷는 것이 메인 스트리트로 가는 가장 지름길이라는 건 나도 안다. 그런데 평민이 많이 사는 하층 지구의 다리를 두 개 건너 빙글 상층 지구로 들어가는 길을 이용하겠끔, 지도에 지시되어 있는 건 어째서 일까?

'처음에 심부름할 때는 목적지에 쭉 직진할 뿐이었는데… 멀리 빙 돌아가는 것은 괴롭히려는 거냐?!'

어쩔 수 없이 나는 왕립 도서관의 마차 정차장에서 메인스트리트와 반대 방향으로 향해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