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 그만둡니다, 서민이 되겠습니다/71. 심부름

다메즈마 (토론 | 기여)님의 2019년 1월 17일 (목) 03:53 판

어떠한 것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소름이 끼치는 것이어서 싫다, 싫다, 노래부르던 그럭저럭 왕궁에서 생활하고 있다. 관사에 거주하며 주변 정리는 스스로 하고 생활비 걱정도 없다.

확실히 복받은 생활이라고 말할 수 있지. 한 인간으로서 대접받고 있다. 하찮게 대하지도 않는다. 레디 앤로서 왕궁 안을 돌아다니면 다소 불쾌감이 섞인 말이나 불만을 듣기도 하는데 루덴스 저하 아래서 일하는 게 대체로 알려져 있으니까다. 그래도 업무 내용은 루덴스 저하와 그 친구들이 메모한 것에서 관련사항을 찾아 정리하여 하나의 사안으로 만드는 꽤 어려운 레벨로 올라 일하는 맛 또한 늘었다.

귀족 중 귀족인 고귀한 분들 옆에 있으며 서민에 가까운 귀족인 내가 실수를 하지 않을까 스스로도 움찔움찔거렸지만 의외로 어찌하고 있다. 내 능력이 예상 이상으로 뛰어난 것인지 고귀한 분들이 관대한 것인지 모르겠다. 왕도에 있지 않는 귀족 아씨로 되어 있으니까 본래 집의 굴레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는 것은 고마웠고 솔직하게 서민이 되지 않아도 자립하여 생활한다는 목적은 달성되었다. 으~음… 언제 끝나는 지는 정해져 있지만.

◇◇◇

레디 앤과 아샤마리아와 아샤 3인을 연기하는 나를 아는 루덴스 저하는 왕도에 심부름을 보내게 되었다. 로베르트님이나 란셀님, 거기다 레이야드님까지… 모두들 자기 종자를 쓰라고요~ 뿡뿡.

"아~ 더워. 피부 그을리겠어"

오늘 나는 가지색 옷은 입었지만 가발을 쓰고서 외출하기에는 너무 더웠기에 가발을 쓰지 않고 머리카락을 완자처럼 하나로 뭉쳤다. 습기가 낮은 나라라곤 하나 의외로 가발은 퍼진다. 방 밖은 힘들다. 손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나는 손에 든 지도를 바라봤다.

로베르트님이 직접 그린 지도로 오늘 심부름은 왕도 제 2지구에 있는 요즘 화제인 과자 가게에서 마드렌을 사오는 것이다. 루덴스 저하는 그렇다 치고 그 사람, 단 것을 좋아하는 지는 몰랐지만 '유행하는 것을 체크해 두는 거야'라더라. 그리고 어째선지 어느 어느 길로 통해 가랬다. 거리를 빙빙 돌아 다리를 세 개 넘어야만 갈 수 있는 것같다. 치안이 좋다는 제 2지구였지만 나름 거리가 있는데 혼자서 걸는 것에 뭔가 의미가 있는 게 분명한 것같은데.

본심을 말하면 내가 하는 왕도 거리는 극히 일부니까 남의 눈치 보지 않고 거리를 걸을 수 있는 심부름은 아주 기쁘다. 단지 말이지, 종자가 있는 분들이 어째서 나를 쓰는 걸까… 난 사무직원이 아니었던 건지? 제 2지구는 가게가 많아서 걷는 게 즐겁다. 내가 가는 과자 가게는 왕도에서 가장 붐비는 메인 스트리트에 있다. 왕립 도서관까지 마차로 가서 걷는 것이 메인 스트리트로 가는 가장 지름길이라는 건 나도 안다. 그런데 평민이 많이 사는 하위 지구의 다리를 두 개 건너 빙글 상위 지구로 들어가는 길을 이용하겠끔, 지도에 지시되어 있는 건 어째서 일까?

'처음에 심부름할 때는 목적지에 쭉 직진할 뿐이었는데… 멀리 빙 돌아가는 것은 괴롭히려는 거냐?!'

그래도 왕궁에서부터 걸을 수는 없으니까 왕립도서관까지는 마차를 사용했지만, 그후에는 어쩔 수 없이 나는 왕립 도서관의 마차 정차장에서 메인스트리트와 반대 방향으로 향해 걸어갔다. 상위 지구와 하위 지구의 중간에 지어진 왕립 도서관에서 멀어지며 거리를 걸어다니는 사람이 늘어난다. 도서관 가까이에는 서점이나 문방구같은 지식인을 상대하는 가게가 많았지만 이윽고 레스토랑이나 식재료를 취급하는 가게로 바뀌고 첫 번째 다리 가까이에서는 비교족 부유해 보이는 주택이 많아졌다. 주택가에서 어느 샛길로 들어갔다. 수터를 가리키는 표지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마차를 끄는 말도 쉴 수 있는 분수가 한 개 있다. 수터에서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도 작게나마 있어서 살짝 공원같은 장소이다.

나는 물을 마셔 목을 적신 뒤에 손수건을 물에 적셨다. 나무 그늘에서 적신 손수건을 사용하여 목 주위의 땀을 닦는다. 멍하니 주위를 바라보자 한 청년이 커다란 짐을 진 할머니에게 말을 걸고 있다. 짐을 들어 주려는 듯하다.

'친철한 사람인 것같네. 하지만 저 할머니는 의심스러워서 짐을 안 맡기려는 거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원래 길로 돌아갔다.

첫 번째 다리를 건너 가면 더욱 잡다한 느낌이 더해지며 가게와 주택이 뒤섞여 있다. 주택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