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 그만둡니다, 서민이 되겠습니다/06. 이렇게 나는 형성되었다

어머니는 길게 감기가 걸렸던 어느 날 아침, 정신을 차렸더니 돌아가셨다. 심장마비인 것같다고 부검을 하러 온 의사가 말했다.

되돌아 보면 나와 같이 하는 생활과 떨어져 하는 생활을 반복했기에 결과적으로 다이어트를 반복한 듯한 모양이 되어 신체에 부담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머리카락 색깔이 옅어진 것은 나이 탓이야, 라고 들었지만 틀렸을 지도 모르고 모르겠다.

그러니까 나는 잘 먹을 거야.

사교계에 데뷔한 후 나의 "귀족으로서 가져야 할 교양"을 몸에 익히는 학습 시간은 없어졌다. 도르시에 선생님이 교양이 몸에 익었다고 보고를 받아서 한 데뷔였던 듯하다. 언니들은 여전히 매너나 품위있게 보일 수 있도록 행동을 계속 공부했지만 말이야.

그 쯤, 나의 저택에 2개월에 3주라는 변칙적으로 지내는 것은 없어지고 때때로 아버지에게 부탁받은 엄무를 하기 위해 1일, 2일가량 머무는 상황이 되었다. 업무라고 해도 내가 읽어도 지장없는 서류를 깨긋히 사본하고 계산하는 것뿐이여서 주로 정원사 작은 방에서 다니며 세탁과 청소를 하러 갔다.

학습시간이 사라져서 단숨에 해방적인 기분이 되어서 '부업 열심히 하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찰나에 어머니의 죽음. 어머니가 사라져 슬픔은 커다란 상실감으로서 계속 나를 휘감아 붙어 있었다. 감정이 결핍된 주제에 문뜩 정신을 차리자 눈물이 제멋대로 쏟아지고 있었다.

장례식의 참석자는 아버지와 나 두사람 뿐. 거리 외곽의 공동묘지에 어머니를 묻었다.

어머니에게 친척이나 가족은 없었다. 있었으면 아버지의 저택 안에 갖힌 측실같은 생활은 선택하지 안았겠지. 사업을 실패한 상인의 딸...이라고 들은 적이 있다. 그 탓에 공부하며 지식을 쌓는 것에 대한 소중함, 손 안에 직업을 가지는 것에 대한 감사함을 알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펑펑 눈물을 흐르는 아버지를 보고 있자 아버지 나름대로 어머니를 좋아했다고 이해했다. 나에게는 아직 연애감정은 이해할 수 없지만.

"저택에서 지내지 않겠니?"
"말씀은 고맙습니다만 지금처럼 지내고 싶습니다."

너무 정중할 정도로 격식을 차린 말을 고했다. 부모님를 향해 이런 격식을 차리다니, 불쾌한 자신을 향해 웃을 수 있다.

생활의 전부를 혼자서 하는 것은 힘들지도 모르지만 마음이 불편한 곳에 있을 시간은 적을 수록 좋은 게 당연하다. 어머니와의 추억이 많은 정원사의 작은 방에서 지내고 싶다. 더듬더듬 호소해 봤다.

아버지는 잠시 서글픈 듯한 얼굴을 했고, 불행히 내 부탁은 이뤄지지 않았다. 귀족의 작은 아가씨 혼자서 살게 해줄 리가 없겠지.

정원사의 작은 방을 정리를 끝난 뒤, 나는 저택의 방으로 이사했다.

장례식 후, 아무도 없어져서 처음으로 엉엉하고 나는 실컷 울었다.

겔란 오라버님은 주로 아버지의 영지관리 업무를 도와주고 있었다. 앞으로 몇 년 지나서 결혼하면 실질적인 영주가 될 것이라고 예상된다. 안타깝지만 이상이 높은 탓인지 아직 약혼자조차 없는 거지만...이 건 금구다. 내가 사교계에 데뷔할 때 에스코트를 해 준 것은 겔란 오라버님이였다. 플로레님과 똑같은 냉랭한 눈빛에 내가 익숙해지지 않는다. 처음으로 공식적인 장소에서 춘 댄스는 기쁘기 보다도 겔란 오라버님의 발을 밟아 버리면 어떻하지란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 끝났다. 그 후 나는 한 번도 공식적인 장소에 참가한 적은 없다.

사교계에 데뷔하는 것은 귀족의 호적에 소속한 자는 꼭 해야하는 사항 중 하나다. 호적에 이름이 있는데 16살까지 참가하지 않으면 존재를 말살된 자로서 그 가문에 왕가의 이름 하에 조사가 들어간다. 그 시점에서 이미 아웃이지만 정말로 죽였거나 학대하고 있던 것이 발각되면 그 나름대로의 벌을 받는다. 귀족은 왕가에 따르며 목숨을 다할 것을 요구받지만 그 다름대로 보호를 받는 것이다. 뭐어, 나의 취급도 그다지 좋지는 않지만 목숨의 위험은 없고 다양한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니까 축복을 받은 편이겠지.

플로레님을 만날 기회는 저녁 식사 이외에는 그다지 없었다. 플로레님이 밤 모임에 참가하면 만나는 경우는 없었다. 나를 시야 안에 들이고 싶어하지 않는 의향에 따라 내가 멀찍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저택에 내가 있을 떄 가족의 누군가가 있으면 나는 저택의 식당에서 그 사람가 함께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아무도 없을 때는 고용인이 만든 밥을 나누어 받아 내 방에서 먹었다. 잘 먹어야 한다, 이것은 철칙. 저택에서 살게 된 내가 부탁하면 일단은 고용인들도 심부름을 해 주게 되었다. 하지만 나도 쓸데없는 부탁은 하지만, 기본적으로 자신의 일은 스스로 한다. 어머니의 가르침대로. 그래서 여전히 침대 시트와 속옷은 직접 세탁하고 내 방 청소는 하고 있었다.

언니들은 한창 성장하여 다과회나 밤 모임에 참가하느라 바쁜 듯했다. 유행하는 드레스를 갖추고 유행하는 소품을 몸에 치장하고 자신을 갈고 닦는데 여념이 없었다. 유행이 끝난 드레스 중에서도 약간 부족한 것에게 나에게 되물려진 드레스가 되었다. 언제까지나 괴롭힘은 계속된다. 사교장으로 얼굴을 내밀지 않는 나에게는 입을 수 있는 드레스라는 것만으로 좋은 거지. 저택에서 가족을 만날 때만 드레스가 필요한 것뿐 이니까. 청소나 세탁같은 것을 할 때에는 소매나 밑단이 넓지 않은 시녀 옷으로 충분한 거지.

플로레님이나 언니분들이 나에 대해서 "집에서 나가고 싶어 하지 않는 사교에 흥미가 없는 성질이 삐뚤어진 아이"라고 소문을 펼쳐 준 것은 나에게 있어서도 빌며 바라던 것이었다.

사교장에서는 나가지 않지만 그 때 그 때에 맞춰 자신이 어떻게 보이면 좋을까? 어떻게 행동해야 무난할까?는 충분이 훈련받아서 잘 할 수 있었다. 가족의 앞에서는 약간 고개를 숙여 서고, 반항하지 않고 일단 따른다, 마음 속에서는 뭐라고 생각을 하든.

절반이라고 해도 귀족의 아가씨인 나는 거리에서 혼자서 외출하다니, 그런 건 허용될 수 없었다. 나 한 명을 위해서 마차를 내주는 것따위도 없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어머니와는 몇 번이나 거리로 갔던 것이다. 슬쩍 담장이 무너진 곳을 기어 올라 저택을 빠져 나간다. 평범한 귀족 아가씨라면 절대 하지 않겠지. 추억이 담긴 길을 걸어 간다. 시녀복을 조금 다듬어 모양을 바꾸고 자수를 하면 나들이 옷처럼 되었다. 머리는 뒤로 하나로 묶으면 흔한 거리 소녀다.

이렇게 옛부터 알던 옷가게에 얼굴을 내밀고 이제 부업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리고, 대신 손수건에 자수한 것을 보이며 매입해달라고 부탁하여 용돈을 벌었다.

거리을 산책하는 것으로 마음의 평온을 되찾았다. 거리 소녀로서 대화하여 표정을 되찾았다.

역시 서민이 나에게는 맞는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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