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 그만둡니다, 서민이 되겠습니다/13. 쓸만한 것

여름이 왔다. 이곳 페르난드 왕국의 여름은 습도는 없지만 나름 덥다. 땀이 흘러도 바로 마르는 건 다행이지만.

올해 여름에도 가족 모두가 교대로 영지의 별장에 가거나 귀향하여 일손이 부족한 왕궁을 도우러 가는 듯하였다. 저택의 하인들도 거기에 따라붙어 간다. 저택의 사람들도 바깥을 쐬고 오는 게 좋지. 하지만 나는 언제나처럼 본래 객실인 내방과 정원사의 오두막과 아버지의 집무실을 왔다 갔다 하며 지낸다. 아, 틈틈이 거리도 갔지.

나 외의 가족이 아무도 없으면 내 식사가 주방에서 준비 되는 건 언제나와 같다. 그때 아버지가 외출 중일 때 하인이 없을 때를 노려 저택의 요리사에게 도와줘도 되냐고 물어봤다. 요리사는 내 얼굴은 알고 있다. 하지만 대화는 인사 정도밖에 한 적이 없다. 그래도 인사는 받아 답해주고, 시녀나 시종에 비하면 태도도 냉담하지 않다. 귀족에게 요리를 시키고 싶지 않겠지만 내가 절반은 평민인 것은 알고 있을 테고, 요리를 해 본 적이 있다고 말하면 조금은 도와도 된다고 말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귀찮지만 시녀복같은 옷으로 갈아입고 주방으로 향했다. 드레스를 더럽힐 수는 없다. 에이프런을 빌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아버지가 부탁한 서류 정리는 끝났고, 내 방의 시트는 일찍 일어나서 세탁했고, 지금이라면 조리하는 걸 도울 수 있는 거야.

"실례합니다. 조리장 계시나요?"

목에 빨간 스카프를 두르고 약간 배가 나온 40대 정도의 남성...... 그 사람이 조리장이다. 등치에 비해 작은 눈이 인상적이다. 이 사람이 계속 사우전트가의 식사를 관리하고 조리하고 있는 것이다. 맛있는 요리를 언제나 만들어 주고 있으니까, 경의를 표해 정중한 말투가 좋겠지.

"아가씨가 무슨 일이지?"

무심코 깜짝 놀랐다. 아가씨... 나를 말하는 거지. 처음으로 그렇게 불린 것 같다. 시녀조차 고작해야 '아샤마리아님'으로 부르고(정말 드물지만) 평소에는 주어 없이 부르는데. 날 위에서 아래까지 바라본다. 아니, 어찌할지 보고 있다. 나도 되돌아본다.

"조리 준비라도 좋으니까, 요리를 도울 수 있게 해주세요"

라고 말하고 고개를 숙인다. 사람에게 부탁할 때는 머리를 숙이는 거다. 귀족이든 평민이든 관계없다고 생각하는 나와 같은 사람은, 귀족 중에서도 소수겠지. 이번에는 조리장이 깜짝 놀란 듯하다. 내 말과 태도, 양쪽에 놀란 거겠지.

나는 절절하게 이전에는 어머니와 같이 요리를 했던 것, 요리 실력이 녹슬어 사라지게 하고 싶지 않다는 것, 지금은 아버지를 도와주는 것이나 저택에서 일이 적기에 주방에서 요리를 도울 수 있다는 것, 허드렛일을 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 요리를 익히고 싶다고 조리장에게 설명했다. 저음에는 조리장은 "어르신에게 명확한 지시를 받지 않으면"나 "아가씨가 할 만한 일이 아니다"라며 말했지만 나의 끈기에 졌는지 "정말로 다른 일을 하지 않을 때에 도우러 와도 된다"고 말해 주었다. 아~ 다행이야.

정원 뒤뜰에 있는 커다란 나무 아래서 나는 감자의 껍질을 깎고 있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양의 껍질은 깎은 적이 없다. 멀리서 나를 의아한 듯이 보는 하인의 모습이 보인다 나는 묵묵하게 작업한다. 스스로 생각해도 서툰 칼질이다. 계속하다 보면 다소 능숙해지려나. 그 전에 먹을 수 있는 부분이 적어진 감자를 보니 조리장에게 혼날 것같다. 이건 어떤 요리에 쓰이는 거지?

플로레님과 오라버님, 언니들은 영지에 피서를 위해 가 있다. 오늘 밤, 아버님은 왕궁에서 야근이다.

감자는 저녁에 냉스프가 되어 나왔다. 오늘은 내 방이 아닌 주방 구석에 있는 테이블에서 식사하게 되었다. 조리장 자신이 요리 설명을 해 준다는 것이다.

"더 먹어. 직접 도와 만든 거니까, 사양하지 말고"

언제나 주방에서 준비한 요리는 트레이에 실려 내 방으로 가져 온 것 뿐이다. 내 배는 1접시 스프로 충분히 가득찬다.

"괴롭히려고 그렇게나 엄청난 양의 감자의 껍질을 깎으라고 한 거야. 서툴렀지만 제대로 일하지 않았냐. 진심인지 시험해서 미안해"

조리장의 시선이 내 손으로 향한다. 손톱에는 흙이 끼고, 피가 번진 상처가 몇몇개 보인다.

입이 험하지만 누군가가 날 걱정해 주는 걸 오랫만이라 가슴이 따스해 졌다. 손을 슬쩍 숨기고 나는 조리장에게 웃는 얼굴을 짓는다.

"좋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꼭 또 도울 수 있게 해주세요"
"이번에는 아가씨의 손이 거칠어 지지 않는 일을 부탁할께"

조리장은 자신의 이름이 톰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나는 닭고기를 토마토 소스에 조린 요리를 칭찬하자 조리장은 맛이 잘 배어 들게 하는 요령을 알려 주었다. 그는 싹싹한 사람이었다. 누군가와 대화하며 먹는 식사는 정말 오랫만이었어. 상대가 귀족이든 평민이든 딱히 태도를 바꾸지 않는 장인 기질을 가진 조리장에게 다른 의미로 감사하고 있었다. 마음이 따듯해지는...... 저택 안에서 이런 기분이 들다니, 잊고 있던 것같다.


가을이 왔다. 수확의 계절인 가을이다. 사우전트 가의 영지도 가장 바쁘게 되는 계절이다. 수확한 곡식이나 채소, 과일을 왕도로 보내거나 겨울을 보내기 위한 음식으로 모습을 바꾼다.

당연히 영지와 왕도의 저택 안의 사람이나 물건의 왕래도 많아지고 교환하는 서간도 많아지고 내 서류사무의 일도 많아 졌다. 일이 많다는 것은 영지의 수확량이 많다는 것으로 세수 증대와 동일한 것이여서 사우전트 가에게 좋은 일인 거지.오라버님은 영지에 가서 돌아 오지 않아 아버지와 나는 저택에서 서류와 씨름하고 있었다. 시종장까지 서간과 서류의 분류을 돕기 위해 불려 있었다.

플로레님과 언니들은 영지의 특산품을 홍보하기 위해서 연일 다과회와 야회에 계속 나가고 있었다.내 방에서 정리한 서류를 아버님이 있는 집무실로 가져 가자, 손님이 있었다. 세무관인 오슬로 후작이었다. 회색 머리카락을 곱게 정돈하고, 신경질적인 듯한 가느다락 검은 눈이 방심할 수 없는 인물이라고 주장한다.

평상시라면 손님이 오는 날은 내 방에서 나가지 않고 손님과 만나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하고 있었지만 급한 서류가 있던 탓인지 손님이 계시다는 연략이 오지 않았다.아버지와 오슬로 후작의 이야기를 방해해서는 안되기에 재빨리 방을 떠나려는 날 오슬로 후작이 붙잡았다.내가 작성한 서류을 칭찬해 준 거다. 그리고 서류 공무원으로 왕궁에서 일하도록 추천해 줄 수도 있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나는 시선을 아버지에게 향했다 자신을 발 밑으로 돌렸다. 내가 의견을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는 눈꼬리를 내리고 오슬로 후작의 제의를 정중하게 거절했다. 나는 밖에 낼 수 없는 딸이 아닌 듯하다. 아버지나 가족들은 나를 이대로 저택에 계속 있게 할 생각인 걸까? 지금 수확기의 업무를 열심히 도와서 상으로 "평민이 되고 싶다"는 말을 꺼내려 했는데.나는 시선을 아래로 향한 채, 더욱 깊게 숙여 인사하고 집무실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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