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 그만둡니다, 서민이 되겠습니다/79. 당신의 이름

지금, 내 눈 앞에 계신 분은 몇 번을 봐도 마음이 치유되는 아름다움을 가진 '친절한 훈남'입니다. 루덴스 저하 일행을 보면서 미남에 익숙한 내가 보증을 설만큼 누가 봐도 멋지다고 생각할 터다. 그 뭐라 말해야 좋을까… 그저 다정한 것만이 아니라 사람을 내려다보지 않는다고 할까 좋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흘러넘치는 거지.

귀족연감을 머릿속에서 아무리 뒤져봐도 그에게 해당할 인물이 없다. 그러니까 귀족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단정한 이목구비는 분명히 귀족에 많지만 말이지 정말이지 어디의 누구인 걸까?

두근두근대는 가슴을 억누르고 그의 앞에 서서 나는 정중하게 머리를 숙였다.

"요전에는 넘어져 무릎을 다틴 절 거리 마차까지 옮겨줘 감사했습니다. 매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 꼭 한 번 더 만나서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곤란한 사람을 도와주는 건 당연하지. 그렇게 뽐낼 게 아니야. 무릎을 다친 너는 기억하고 있어. 잠깐 오늘은 분위기가 다른 거같지만… 그 모습을 보면 이제 무릎은 다행인 것같네(방긋)"

"아, 예. 덕분에 이제 괜찮아요"

다정하게 대해 주는 것이 안 익숙한지라 어째선지 등이 간질간질한 기분이 든다. 부드러운 테너 보이스가 기분 좋다.

정신을 차리니 킥카가 내 앞치마의 옷자락을 꾹꾹 당겼다. 내가 바라보니 씨익 웃으며 귓가에 입을 대고 질문했다.

"찾던 사람이 이 사람이야? 엄청 잘생겼네. 누나 한 눈에 반한 거야?"

"앞부분은 정답, 뒷부분은 땡"

나는 킥가를 내게서 잡아뗐다. 흐뭇하다는 듯이 그가 우리를 본다.

"질문해되 될까? 어째서 너희는 그렇게 열심히 날 찾던 거야?"

슥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는 한 발 내게 다가워 얼굴을 쑥 가까이댔다. 무심코 뒤로 물러난 나.

"꼭 당신의 이름을 알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아이는 날 도와준 거예요"

"내 이름을?!"

"예. 그, 모두에게 친절하게 대해도 이름은 아무에게도 안 말하고 떠났죠. 모두가 모르는 당신을 나는 알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알고 싶던 것은 사실. 루덴스 저하 일행에게 '친절한 훈남'이 어디의 누구인지 찾으라고 한 것은 말할 수 없다.

'이렇게 좋은 사람이라면 젊은 처녀의 부탁을 들어주곘지'

조마조마하게 올려다보는 자세로 나는 그의 답을 기다렸다.

"네 부탁은 들어주겠지만 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야. 내 이름같은 건 무의미해… 너, 내가 어디의 누구인지 알고 싶은 거지? 그래도 찾을 수 없을 꺼야. 존재하지 않으니까"

덧없게 자조하는 듯한 미소를 띄우며 그는 말을 뱉었다. 그대로 빙글 몸을 돌려 '그래도 감사 인사는 기뻤어"라고 말하곤 걸어나갔다. 머리가 안돌아가서 움질일 수 없던 나는 억지로 발을 움직여 쫓아갔다. 그의 등을 향해 손을 뻗어 필사적으로 말을 건다.

"기, 기다려주세요. 당신에게 있어서는 무의미해도 난 당신의 이름을 알고 싶어. 그러니까 이름을 가르쳐 줘요"

그는 놀란 얼굴을 짓고 돌아봤다. 그리고 기쁘다는 듯 웃고 어쩔 수 없다는 듯 이름을 알려 줬다.

"내 이름은 비어웨이. 먼 나라의 말로 '없어'라는 의미라고 해. 그다지 좋아하는 이름이 아니니까 웨이라고 불러줘. 네 이름은?"

"웨이구나. 나는 아샤. 내게 있어서 웨이는 눈 앞에 제대로 존재해. 무의미하지 않아"

"아샤라, 귀여운 이름이네"

꺄아~ 귀여운 이름이라고 듣는 건 처음이야. 갑자기 얼굴이 뜨거워지네~

"웨이는 자신의 존재를 알고 싶어서 여러 사람에게 친절한 거지? 실제로 당신의 친철로 많은 사람이 도움을 받았어. 나도 그 중 한 명이야. 나도 당신처럼 누군가를 돕고 싶어. 내가 당신을 도와도 될까?"

뜨거워진 나는 어느샌가 뜨겁게 웨이에게 말했다… 어라라, 냉정한 나는 어디에 간 거야?! 킥카의 시선이 아프다. 얘 뭔 말하는 거냐? 같은 시선으로 보지마~

친절한 그의 이름을 알아냈을 터지만 나까지 친절한 그녀가 되려고 하고 있다. 뭐어 같이 있으면 그가 어디 사람인지 뭘 하려고 하는 건지 알아 낼거라고 생각한다. 순수하게 이 사람을 좀 더 알고 싶다. 어째서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던지 무의미하다고 말하는 지 알고 싶다. 거기다 루덴스 저하의 지시도 해내야 하고 일석이조지. 내 머릿속에서 점점 김치국을 마셔간다.

"음… 네 존재로 뭔가 바뀔지도 모르겠네. 날 찾는다면 찾아도 돼. 내일 9시에 여기서 만나자. 작은 알바도 오고 싶으면 와도 돼"

이번에는 정말로 웨이는 갔다. 갈 때에 그가 오른손을 들자 어디선가 힘쎈 네 남자가 나타나 그를 둘러싼다.

'저게 뭐야…'

살짝 기가 죽었다. 나 성급했던 건가? 엮이면 안되는 사람이었을까?

그렇게 반짝반짝거리는 존재감이 있는데 자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거 하며 자신의 이름을 무의미하다고 하는 사람. 화려하진 안지만 조잡하지는 않다. 귀족에 준하거나 그 이상으로 부유하게 보였다. 행동은 귀족이 아닌 것같지만 배려는 충분히 됨됨하다. 충분히 복받은 생활을 할 터다.

그가 어디의 누구인지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존재가치를 알려주고 싶다고 나는 생각해 버렸다. 쓸데없는 참견이라고 생각되도 어쩔 수 없지.

"킥카 오늘도 도와줘서 고마워. 내일은 어떻게 할래?"

"나 내일도 올께. 왠지 재미있을 것같잖아"

"집안일은 안 도와줘도 돼? 킥카가 맡은 일도 있잖아"

"제대로 하고 있다니까"

흠 그럼 괜찮겠지.

"내일도 잘 부탁해"

나는 남은 반투명한 황색 사탕을 삵으로 킥카에게 선물했다. 눈을 크게 뜨곤 껑충껑충뒨다. 헤실헤실대며 사탕을 들고 가는 킥카를 보고 나는 오랫만에 충실한 느꼈다.

"그럼 내일도 힘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