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 그만둡니다, 서민이 되겠습니다 66화

연초, 인기척 적은 날에 왕립 도서관을 방문했을 때에는 석조 도서관 소리를 모두 흡수하는 듯하여 돌벽은 차가웠다. 하지만 오늘은 같은 도서관인데 돌로 이루어진 벽이 온기를 지닌 듯이 느껴진다. 날씨가 다른 탓만은 아니겠지. 내 마음이 달라진 게 크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그럴 것이 이전에 올 때보다 훨씬 도서관에 올 수 있던 게 즐겁기에.

건물에 들어가자 생각한 것보다 방문자는 적었다. 날씨가 좋기에 서민은 모두 세탁을 하러 가서나 밭일을 하러 가는 등 각자 일하고 있겠지. 자유로운 시간이 있는 책벌레만이 여기에 지금 있는다. 응, 짙은 책 냄새가 나는 건 좋네.

왕립도서관 안벽에는 여전히 그림이 잔뜩 장식되어서 그 일부가 바뀌어서 이번에도 나는 그림에 열중해 버렸다.

"인물화에 풍경화, 정물화, 여전히 다양한 그림이 장식되어 있어. 어떻게 하면 이런 터치로 풋을 쓸 수 있는 걸까. 그림을 고르는 기준이 있는 걸까… 저하에게 물어보고 싶어지네"

가깝게 가기도 떨어져 보기도 하며 그림을 감상하는 것은 나 혼자밖에 없다. 책을 읽을 시간이 줄어드니 신경쓰이는 그림 몇 점을 따라서만 감상하고 있다.

왕궁에도 복도나 계단에 잔뜩 그림이 장식되어 있지만 뚫어지게 보고있면 수상한 사람이라고 여겨진 듯 아직 못 감상하고 있다. 여기라면 어떻게 뭘 보든 괜찮지.

"부인, 무슨 좋은 그림이 있었습니까?"

어느샌가 등 뒤에서 내게 누군가 말을 걸었다. 이런 일을 할 사람은 딱 한 사람 짐작간다. 아마 이 사람일 거라고 상상하며 뒤돌아보자 역시 검은 머리에 하늘색 눈동자를 지닌 노와르백이 서있었다.

검은 머리 사발에 가지색 사무복을 입은 내가 누구진지 알 턱이 없다. 알려질 필요는 없다. 그러니까 거리를 벌려야 한다.

"멋진 그림이 잔뜩 있군요"

귀족이라기엔 쌀쌀만은 한마디만을 내뱉고 나는 애매한 미소를 지으며 입근처를 가리고 '오호호'거리며 그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아샤마리아를 아는 인물을 만나면 안된다.

등 돌린 내게 소리가 들렸다.

"오늘은 지리 분야 서가에는 안가는 겁니까? 레디 앤"

으~응? 진정, 진정하자... 아직 이름을 안 밝혔지. 마음에 소용돌이치는 의심을 가라앉히고 평정스런 가면을 얼굴에 쓰고 빙글 돌았다.

눈 앞에는 온화한 분위기를 두른 노와르백이 방긋 웃으며 서있을 뿐. 나는 깨달았다.

'이 사람도 루덴스저하의 친구들 중 한 명이구나'

'저하에게 오늘 당신이 여기 방문한다는 것을 들어서 말이죠. 다시 만날 수 있길 기대했어요. 실례합니다. 멋진 장식이네요. 미리 알지 못했다면 당신인 줄 몰랐겠어요."

부드럽게 노와르백은 실례하지 않는 선에서 거리를 유지하고 슥 내 전신을 살피고 확인했다. 그 눈동자는 날 나무라는 것도 타박하는 것도 아닌 사실을 확인할 뿐인 것이었다. 온화한 언행과 말투는 '이 사람은 적이 아니다'라고 나에게 충분히 이해시키는 것이었다. 그렇다 해도 저하의 지인이라는 시점에서 아군이라고도 할 수 없을 뿐이지만.

노와르백은 '왕도와 왕국 지도는 이미 준비해 뒀습니다'라고 나에게 알리고 귀족만이 들어갈 수 있는 장소로 나를 안내하여 간다.

'이럼 따라갈 수 밖에 없지'

스쳐지나가는 몇 명씩 있었는데 노와르백에게 가볍게 인사하고 지나간다. 평소부터 신분 상관없이 도서관에 오는 인물을 접하는 것같아 귀족이나 평민이나 인사를 해준다.

'모두가 호의를 가진 좋은 사람이구나. 하지만 저하의 친구지. 필요 이상으로 다가가는 건 위험하지'

이런 저런 것을 하는 사이에 귀족만이 들어갈 수 있는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노와르백과 같이 있는 덕분에 접수처에 신분증을 제시하지도 않고 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서가 옆에 있는 거다란 책상 위에 책 몇권과 커다란 면직 그물로 말려있는 용지가 놓여있다. 아무래도 저게 미리 준비해둔 물건같다. 면직 그물에 말려있는 용지를 펴 보자 그건 커다란 왕도 지도였다.

"예쁘다…"

왕궁과 주요한 건물은 그림으로 표시되어 있고 건물은 사각형으로 상위지도와 하위지도의 경계선은 두꺼운 검은 선으로 그려져있고 각 지도마다 색으로 나뉘어 있다. 지도 중심에는 왕궁으로 향하는 대로, 가지처럼 이어지는 도로, 혈관같은 지로로 자그만한 글자로 지명이 제대로 써있다. 가장 면적을 많이 차지한 건 물론 왕궁이다. 전궁(前宮)에 중궁(中宮), 후궁(後宮)은 세세하지 않게 그려져 있지만 그건 국방 문제 때문일까. 그리고 신경쓰이는 건 새까만 부분이 있다는 것. 도로까지는 그려져 있는 같지만 그 주위는 새까맣게 칠해져있다. 여긴 어디지…?

아~ 치안이 나쁘다는 슬램구역이라는 것이겠지.

나는 가지색 옷의 호주머니에서 미리 써둔 메모를 꺼내여 지명을 확인해갔다. 지명을 중얼거리며 지명을 찾고 있자 옆에서 노와르백이 보충하는 듯 어떤 토지인지 설명해간다. 흐음~ 노와르백은 박식하네요.

경비에 대한 용어집을 펴 내가 질문을 하자 노와르백은 더욱 장서를 가지고 와 설명해준다. 이 사람 평범한 사서 수준을 넘었어!

한 차례 수업같은 시간이 지나가자 나에게 있어 노와르백은 존경해야 할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 사람 사전같다.

'이렇게 공부한 것은 오랫만이네. 아~ 머리가 터질 것같아 하지만 똑똑해진 것같은데'

나는 목을 빙글빙글 돌리고 손으로 어깨를 꾹꾹 주무른다. 귀족 규수라면 이런 곳에서 하지 않은 행동이지만 지금 나는 '레디 앤'인 걸.

"알고 싶던 건 다 찾았습니까? 앞으로 내가 말한 것은 혼잣말예요. 필요없는 참견일지도 모릅니다만 괜찮다면 들어주세요."

불안한 듯한 물색 눈동자가 희미하게 흔들리는 듯 보였다. 노와르백은 말을 계속한다. 다행히 우리 이외에 주변에 사람은 없다. 주변에 있는 것은 오직 책 뿐.

나는 여디서 들을 수 있는 것을 바라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자연스럽게 몸을 꼿꼿히 세우고 앞으로 흘러나올 말에 귀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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