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색 마법사/1장: 마법사와 온천마을/05화

랄프 메이어즈. 에레미아국 호슬링 출생으로 16살이다. 어릴적부터 딱히 눈에 띄는 아이는 아니었지만 갑자기 의표를 찌르는 듯한 행동을 하여 주변 사람을 놀라게 하는 경우도 가끔 있었다. 그리고 중등과를 졸업한 후에 경비대에 입대한다. 부모님은 토산물가게를 영업하고 랄프을 아무런 부족함없이 키웠다.지극히 평범한 가정이었다 할 수 있다.

랄프에게는 경비대에 입대한 이유가 있다. 애초에 정의감이 강했던 것도 있지만 옛날, 어릴 적에 어느 여해을 하던 모험자가 괴물에게서 구해준 일이 있어 그 인물을 동경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직 10살을 막 지났을 랄프가 마을를 슬쩍 나와 모험을 한다는 기분으로 강의 상류로 물고기를 낚으러 나갔을 때의 이야기다. 부모님에게는 어른이 같이 나가지 않으면 마을 밖에 가면 안된다고 몇번이고 주의받았지만 이 주변은 위험한 마물이 거의 안 나오기도 해서 랄프는 괜찮을 거라고 우습게 여겼다. 랄프는 도중에 있는 폭포를 넘어 무난하게 산 깊숙한 곳인 강 상류까지 도착했다.

랄프는 역시 괜찮았다고 생각하며 혼자서 여기까지 올 수 있던 것에 살짝 흥분하며 낚시를 시작했다.

낚시를 한 지 30분. 잡은 게 하나도 없어 랄프가 자리를 옮기려할까~ 생각할 때였다. 갑자기 등 뒤에서 부스럭 소리가 들렸기에 랄프는 작은 동물같은 거겠지하고 뒤를 돌아봤다. 돌아본 나무들 사이에 2미터는 가볍게 넘는 인간형 괴물이 있었다. 그건을 오거라고 불리며 사람 고기를 좋아하는 랄프 또한 아는 유명한 괴물이었따.

거기에 서 있는 오거는 랄프가 들은 대로 전신이 털로 수북하고 우락부락했다. 면상조차 검고 꾸불꾸불한 털이 밀집해 반은 털에 파묻힌 금빛 눈동자가 졸린 듯이 여기를 봤다. 그리고 뺨까지 찢긴 큰 입에서 삐쭉빼쭉 날카로운 이가 보였다 말락하고 입가에서 침기 흐르고 있었다. 신체에는 하반신에 더러운 천을 둘렀을 뿐으로 손에 여기저기 움푹패어 요철있는 곤봉을 들었다.

랄프는 경악했다. 어째서 이런 녀석이 여기에 있냐고. 아니 그것보다도 여기까지 접근했는데 어째서 자신은 눈치채지 못했을까. 마치 악몽을 꾸는 것같았다. 그러보 보니 볼츠 산의 서쪽에 있는 동굴에서 가끔씩 괴물이 들로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도 같았다. 이제와서 생각나봐야…

랄프는 머릿속에서 도망가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몸은 마비된 것같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누구라도 이런 게 갑자기 등 뒤에 등 뒤에서 나타나면 그러겠지.

오거는 천천히 다가왔다. 거리가 가까워 지면 질수록 코가 비뚤어질 듯한 강렬한 고약한 냄새가 랄프쪽을 풍겼다. 얼굴을 찌푸리는 랄프. 도저히 못 버티겠다. 그러기에 이녀석은 온천이라도 들어가서 몸을 씻고 오란 말이야, 라고 랄프는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미 둘의 거리는 3미터 정도가 되었다.

눈 앞에 있는 오거는 아이인 랄프에게 있어서 올려다 봐야 할 정도로 컸다. 랄프는 살짝 위에 있는 오거의 가슴털을 딱딱하게 굳으며 봤다. 오거는 눈알을 이리저리 움직이는데 랄프를 관찰하는 듯했다. 자신을 어찌 먹을지 고민하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며, 랄프는 얼굴이 창백해졌다.

문뜩, 랄프는 오거가 든 봉을 봤다. 아까는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피로 인해 물든 흔적이 보였다. 그것을 본 순간 랄프는 공포의 한계를 넘었던 걸까,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비명소리를 질렀다. 잡자기 큰 소리를 지르는 랄프에게 응하듯이 오거도 랄프의 몇배는 될 듯한 포효를 질렀다.

오거의 포효를 들은 랄프는 갑자기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고 등 뒤에 있던 강으로 서둘러 뛰어 들었다. 수위가 허벅지 정도인데다 흐름도 빠르지 않기에 문제 없더. 첨벙첨벙, 물을 가르며 강을 건너려 하자 도망치게 둘까 보냐라는 듯히 오거도 엄청난 기세로 돌진해 왔다.

놀란 랄프는 들고 있던 낚시대를 갑자기 던졌지만 괴물의 곤봉에 손쉽게 부셔졌다. 단숨에 거리가 좁혀지고 곤봉을 휘두르는 오거. 직격하면 그야말로 질척질척한 고기덩이가 될 게 틀림없다. 확실히는 아니지만 피할 수 없다. 라고 랄프는 반쯤 포기했다.

하지만 거기서 그에게 행운이 찾아왔다. 강 바닥에 미끄러운 바위에 발이 미끄러져 굴러 넘어졌다. 그 덕분에 괴물의 강렬한 일격을 우연히 피했다. 머리 위를 머리카락이 곤두 설 듯한, 휘잉, 풍압이 지나갔다. 그리고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따.

굴러 넘어진 랄프에게 발이 걸려 오거가 쎄게 굴렀다. 첨펑이라며 커다락 물기둥이 섰다. 랄프는 엉덩방이를 찧은 채 아연실색하며 그 광경을 봤다. 오거가 볼품없이 머리부터 강바닥에 박혀있는 것을 제대로 봐버렸다.

랄프가 그대로 멍하니 보고 있자 오거가 천천히 일어섰다. 오거의 전신에서 뚝뚝 대량의 물방울이 흘러 떨어졌다. 전신의 털이 물에 닿아기에 어째선지 한둘레 작아진 듯 보였다.

오거의 금빛 눈에 핏줄이 서며 랄프를 노려봤다. 크으으으 입에서 낮은 으르렁거리는 소리같은 게 나왔다. 화났다. 틀림없이 화났어. 랄프는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고, 마음 속에서 의미없는 변명을 했다.

오거는 한 번 더 포효를 외치고 곤봉을 있는 힘껏 휘둘려 내려쳤띠. 아무래도 진지하게 있는 있는 힘 다한 일격인 것같았다. 상당히 열받은 것같다. 랄프는 이번에야말로 끝이라고 생각하며 눈을 꾹 감았다.

그 때였다. 방!! 머리 위에서 커다락 소리가 울린 것은.

랄프는 각오한 충격이 시간이 지나도 안왔기에 벌벌 떨며 눈을 떴다. 거기에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있었다. 한 남성이 오거의 일격을 한 손으로 받아 막았기 때문이다. 아까 소리는 그 때 난 것같다. 랄프는 망연자실하게 남자를 봤다. 연령은 50대 초반쯤일까. 주름 하나하나가 험난한 인생이 새겨진 듯한 차분한 남자였다. 멋진 백발을 목 뒤에서 묶고 입가에도 잘 다듬은 수염이 있었다. 왼눈에 세로로 가로지른 흔적하며 그 분위기하며 백전노장을 떠올리게 한다.

남자는 맨손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곤봉을 받아 세우고 랄프를 봤다. 랄프는 그 얼굴이나 분위기로 살짝 무섭다는 이미지를 품고 있었지만 남성의 눈이 매우 다정하고 맑은 것을 깨달았다. 스스로가 어째선지 매우 크게 따듯해지는 것에 품기는 기분이 들었다.

남성은 연령치고는 생기있는 검은 눈동자를 랄프의 눈와 맞추며 상처는 없는지 물었다. 그 외견대로 차분하고 침착한 목소리였다. 랄프는 어쩐지 얼빠진 듯한 마음으로 아무말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랄프의 대답에 남자는 옅지만 웃음을 띄웠다. 진정으로 안심할 수 있는 웃음이었다.

그 때 한동안 얼은 듯이 멈춰있던 오거는 크게 울부짖고 한 번 뒤로 빠져 거리를 벌였다. 남자는 그걸 보고 눈매가 날카로워 지더니 오거를 향해 느긋하게 걸어갔다.

무심코 랄프는 남자에게 말 걸려고 했지만 남자는 모두 안말해도 안다, 라는 듯히 막았다. 남자는 대수롭지 않은 듯이 괴물과의 거리를 좁힌다. 남자가 심상치 않은 실력이란 건 보아와서 알지만 랄프는 살짝 안달복달났다.

오거도 그 여유로운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남자를 위협하듯 다시 포효하고 도움닫기를 하여 단숨에곤봉을 남자의 머리 위로 내려쳤다.

하지만 곤봉이 남자의 머리를 치지 직전에 남자는 몸을 피해 가볍게 그 강렬한 일격을 흘렸다. 허공을 가르는 곤봉과 헛발딛은 오거. 그리고 남자는 눈 앞을 지나가는 곤봉을 향해 손날을 휘둘렀다.

랄프는 눈을 의심했다. 아무런 소리가 나지도 않았는데 곤붕이 정중앙에서 빠찍 소리를 내며 부러져 두 조각으로 나뉘었다. 손날로 잘려 나뉜 곤봉의 반쪽이 퐁당 소리를 내며 강에 떨어졌다. 오거는 손에 남은 기묘한 모양이 된 곤봉을 아연실색하며 봤지만 바로 그것을 던져 버리곤 눈 앞에 있는 남자에게 주먹을 날렸다.

남자는 당황하지 않고 몸을 비스듬히 파고들어 바위도 부쉴 듯한 그 주먹을 슬쩍 피하고 오거의 팔에 손을 댔다. 그러자 다음 순간에는 괴물의 큰 몸집이 한 번 돌며 허공을 날랐다. 등부터 강에 낙하하는 오거.

랄프에게는 남자가 도대체 뭘 했는 지 전혀 몰랐다. 학교에서 몸 하나를 사용하는 호신술을 경비대 사람에게 배웠지만 그것과는 명백하게 이질적 체술이었다. 어찌해야 2미터 이상이나 되는 터질듯한 근육으로 이루어진 괴물을 한손으로 던질 수 있는 걸까?

비틀비틀 일어서는 오거를 보며 남자는 '슬슬 끝낼까', 작게 중얼거렸다. 그것을 들은 오거는 살짝 휘청거리며 양손을 꽉 주먹쥐었다. 이렇게까지 당하면 적당히 도망쳐도 좋으련만. 인간형이라고는 하나 지능은 그다지 안 높을 지도 모르겠다고 랄프는 생각했따.

이번에는 남자는 피하지도 않았다. 랄프가 엑 소리를 내며 놀란다. 괴물이 랄프의 머리크기라면 가볍게 쥐어 으깨버릴 듯한 손으로 남자의 어깨를 꽉 잡았다. 온 힘으로 쥐는 듯한 끼릭끼릭 소리가 랄프한테까지 들렸다.

하지만 남자는 아파하기는 거녕 상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후욱 소리를 내며 한 번 깊게 숨을 쉬곤 꽉 눈을 부릅떴다. 그 순간 남자의 몸에서 보이지 않는 충격이 발사되어 오거의 손이 팡 소리를 내며 튕겼다.

틈을 주지 않고 남자는 주춤대는 괴물의 품으로 파고 들어 발로 지면을 강하게 밟는다. 동 소리가 나며 발 밑의 물이 폭발했다. 동시에 남자는 기합 소리를 내며 괴물의 복부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무시무시한 묵직한 소리와 함께 오거의 몸이 접히며 지면와 나란히 훅 날라갔다. 강 구석까지 날라가 지면을 뒹굴어 나무 밑동에 부딛치며 겨우 멈췄다.

랄프는 경악스럽다는 눈빛으로 그 장면을 보았다. 그 괴물이 수 미터는 날라갔기 때문이다. 오거는 입가에서 핑크빛 거품이 섞인 피를 흘리며 머리가 힘없이 쓰러졌다. 틀림없이 기절한 거라고 랄프는 확신했다.

남자는 심호흡을 한 번 한고 랄프를 향해 돌아보곤 '집에 갈까'라고 말했다. 랄프는 기묘한 흥분에 가득차며 고개를 끄덕였다.

※※※

랄프가 전사에게 목숨을 구원받고 나서 수년 후인 현재, 경비대에 입대하고 나서 2년째가 되었다. 랄프는 점심식사를 하여 한숨 돌린 후 경비대 숙사 뒤에 있는 광장에서 일과 훈련을 끈내고 우물에서 푼 물을 사용하여 상반신을 닦고 있을 때였다.

"아야야얏"

몸에 무수하게 생긴 멍에 냉수가 파고들었따. 이건 훈련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다. 경비대 동료인 잭이 난입해서 훈련이라 칭하며 랄프를잔뜩 패서 생긴 것이다. 충격을 흡수하기 위한 짚을 두른 훈련용 목검을 사용했지만 힘껏 때리면 꽤 아프다. 그러나 이건 자주 있는 일이다. 기분이 나쁘다거나 하면 랄프를 트집잡는 경우가 많다. 도무지 랄프랑은 상성이 좋지 않은 것같았다.

랄프는 얼굴을 찡그리며 몸을 닦으면서도 그 초로의 전사를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여태껏 몇번이고 머리속에서 재생했기에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그만큼 그 사전은 랄프에게 충격을 주었다. 전사가 괴물을 쓰러트린 후 집까지 데려다 준다 했기에 랄프는 그 도중에 전사에게 여러가지 물어봤다.

전사는 동방 출산인 무도가로 수행 여행을 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놀랍게도 거의 30년 이상 여행을 했다는 것같았다. 거기다 그정도로 강하면서 아직도 자신의 이상과는 엄청 멀었다고 말했다.

랄프는 무도가라고 자칭하는 사람을 처음으로 봤다고 말했다. 그걸 들은 전사는.

"물론 노잣돈을 벌기 위해 모험자 일도 때때로 하고 있지만 말이지"

이라며 살짝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었다. 여행을 하는 무도가에게 벌이란 거의 없는 거나 다름없는 것같았다. 하지만 랄프는 옆을 걷는 전사를 뜨거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아까전부터 가슴이 쿵쿵대는 게 멈추지 않았따.

랄프에게 있어서 위기에 처했을 때 씩씩하게 나타나 적을 화려하게 쓰러트린 이 전자는 그야말로 이상의 히어로, 그 자체였다. 랄프의 나잇대의 남자 아이라면 누구라도 한 번은 동경하겠지. 그와 같은 나잇대의 아이들도 장래에는 괴물들을 쓱쓱 쓰러트리는 몸험자나 에레미아의 엘리트 기사인 마도기사가 되어서 국가를 지키는 일을 하자, 고 각자 꿈을 이야기하곤 했다.

랄프는 부모님의 일을 하찮게 여기는 게 아니다. 하지만 랄프의 가슴 속에 있던 뜨거운 혼이 이 전사와 만나며 구체적인 형태를 처음으로 이뤘다. 스스로도 이 기사처럼 강해지고 싶다. 다른 사람을 지킬 수 있는 남자가 되고 싶다며.

마음 근처까지 왔을 쯤에 전사는 작별이라고 랄프에게 알렸다. 앞으로 에레미아의 서울인 엘시온에 용무가 있다고 했다. 랄프는 벌써 작별이냐며 서둘러 말해 버렸다.

"당신처럼 강해지고 싶습니다! 절 제자로 받아주세요!!"

전사는 살짝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나서 눈동자가 다정하게 가늘어지며 말했다.

"미안하구나. 실은 이미 예약이 되어서 말이지. 오래된 지인의 딸이지만 꼭 동방무술을 가르쳐달라 원한다고 부탁받아서 말이지"

랄프는 실망했지만 그것과 동시에 놀랐다.

"딸이라니…… 여자아이란 겁니까?"
"그런단다. 너보다 연하인 여자아이지. 실제로 나도 기특한 처녀라고 생각한다. 태어났을 때에 우연히 만나고 나서니까, 또 만나는 건 수년만인가 싶은데"

어떻게 자랐으려나, 라며 전사는 즐겁다는 듯히 웃었다. 그리고 나서 전사는 랄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똑바로 눈을 바라보고 말했다.

"너는 매우 좋은 눈을 가졌구나. 올바르고 정열을 간직한 눈이군. 어딘가 그 여자아이랑 통하는 게 있어. 그리고 만약 강해지고 싶다면 그 마음을 잊지 말거라. 앞으로 그 의지가 꺽이려는 일이 몇 번이고 생기겠지. 하지만 자신을 믿으렴. 믿음은 가장 큰 힘이 될테니까"

전사는 랄프에게 그런 말을 남긴 후 엘시온으로 여행을 갔다. 그 때 들은 말을 랄프는 한 마디 한 구절도 잊지 않았다. 그후로 랄프는 은퇴한 전 경비대원의 에이스였던 남자에게 며칠이고 부탁하여 검술을 가르쳐 달라거나 전모험자인 클로에게도 마물과 싸울 때에 필요한 주의사항따위를 배우기도 했다.

부모님이나 친구들에게는 갑자기 열정적으로 단련하기 시작한 랄프를 보고 놀라는 듯했다. 랄프에게 자극을 받아 훈련을 시작한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어른에 됨에 따라 모두는 점점 현실을 보게 되었다. 모험자나 기사를 꿈꾸던 친구들도 건실하게 가업을 잇는 것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관광으로 충분히 융성한 마을이다. 굳이 마을 밖에 나가거나 뭔가 큰 일에 도전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다. 시골에 있는 특유의 폐쇄적인 심리도 있겠지만.

그런 속에서도 랄프는 훈련을 그만두지 않았다. 그 전사와 만난 것을 계기로 랄프가 원래 가진 강한 정의감이나 정열이 개화했던 것이겠다. 일부 주변 사람들이 은연 중에 비웃는다는 걸 알았지만 랄프는 신경쓰지 않고 수련을 계속해 경비대에 들어왔다.

'하아 근데……'

랄프는 마음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몇년 동안 훈련을 계속해 보고나서 하나 안 것이 있다. 그건 자신에게는 이렇다할 재능은 없다는 것이다.

우선 자신에게는 마도의 재능은 없다. 이건 어릴 적부터 알던 것이다. 에레미아에서는 반드시 마도를 행사할 수 있는 소질이 있는지 아닌지를 지정된 연령에 확인하는 것이 나라의 방침이다.

마도의 재능이란 즉 마력을 몸 밖으로 방출할 수 있는 재능을 가리킨다. 이 재능은 유전으로 정해진다. 그러기에 조상에 마도사가 전혀 없을 경우에는 우선 마도의 재능을 지닌 사람이 태어나는 게 불가능하다. 매우 드물게 격세유전으로 마도와는 무관한 집안에서 마도사가 배출되는 경우도 잇지만 그것 또한 좀처럼 없다.

그렇다 해도 마도도 엄밀하게 두 종류로 크게 나뉜다. '내기' 마도와 '외기' 마도다. 사람은 마도의 재능의 유무에 상관없이 모두 마력을 지닌다. 아이라도 아는 상식이다.

'내기', '외기'란 근본은 같은 자신의 마력이지만 몸 안과 밖으로하여 편하게 나눈 방식이다. 체내의 마력을 자체적으로 조작하는 게 '내력' 마도, 몸 밖으로 방출하여 마도문을 그려 자연의 섭리를 구상화하는 게 '외기' 마도다. 후자가 일반적으로 '마도'라 불리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전사가 괴물을 곤봉을 받아 세우거나 잘라낸 것은 아마 '내기'를 사용한 거라고 랄프는 생각했다.

'내기'마도라면 누구라도 다룰 가능성은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긴 수행이 필요하다. 사람에 따라서는 거의 10년정도걸려서 체내 마력을 조작할 수 있게 된 사람도 있는 것같지만 랄프는 아직 새싹이 나려하지도 않았다. 거기다 검술 사범을 해준 전 경비대원이 말하길 자기도 몇십년을 훈련했다만 1류 '내기' 사용자는 한참멀었다고 했다. 애초애 경비대 중에서도 '내기'를 조작할 수 있는 사람은 몇명밖에 없다.

그러면 다른 것은 어떤가, 라고 랄프는 생각한다.

신체능력은 잘쳐서 보통. 검술로 봐도 경비대 중에서는 평균적일 것이다. 요려이 좋아 신체능력을 복받은 어느 한 동기는 거의 2~3년정도 훈련을 해서 랄프를 쉽사리 뛰어 넘어 지금에선 장래의 에이스 후보라고 불릴 정도인데.

그에 비해 랄프는 기합만이 헛돌며 계속 실패했다. 그러기에 2년째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동료에게 '신입'이라고 놀림받고 있었다. 성실하고 노력가에 거기다 기운찬 녀석이긴 하지만 그 열혈스러운 부분이 살짝 부담스럽다. 그게 경비대에서 랄프가 받는 평가였다. 정반대라 할 수 있는 잭과는 뜻이 맞지 않는 게 당연했다.

직속 상관인 클렉 대장은 그 다정한 성격도 있어 어찌되었든 랄프를 비호해주지만. 랄프는 후우, 다시 한숨을 쉬고 물을 적신 타월로 몸을 닦는다. '자신은 정말로 그 사람처럼 될 수 있는 걸까'라며 아무리 해도 나약함이 나와버린다. 이러면 안돼, 하고 랄프가 뺨을 짝짝 치고 있을 쯤에 한 동료가 광장으로 얼굴을 내밀며 말을 걸었다.

"어, 야, 랄프. 너한테 손님이야!"

어째선지 살짝 동요한 느낌이다. 랄프가 '내게 손님?'이라고 생각하며 눈썹을 찌푸리지만 그 인물이 태양에 비춰지고 백은으로 빛나는 머리카락이 휘날리며 숙사 옆의 작은 길에서 광장으로 들어온 순간, 지금까지 고민하던 게 머릿속에서 깔끔하게 날라갔다.

거기에 있던 것은 방금 몇시간 전에 만난 어느 소녀였다. 소라 에델베르크. 이 에레미아에서도 유수한 명가출신의 규수. 랄프가 할 말을 잃자 소라가 살짝 눈이 동그래져,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때가 나빴던 것같군요. 다음에 다시 오겠습니다."

라며 빙글 등을 향해 말했다.

랄프는 '아',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상반신을 벗고 있었다. 랄프는 얼굴이 새빨개지더니,

"아, 아니, 바로 갈아입을테니 잠시 기다려 주세요!!"

라며 크게 서두르며 허둥지둥 옷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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