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색 마법사/1장: 마법사와 온천마을/06화


랄프는 몸을 번개같이 정돈하고 가볍게 손빗으로 머리를 정리한 후 트레이 위에 있던 동방산 차를 광장 구석에 있는 낡아빠진 휴식용 테이블로 옮겼다. 처음에는 숙사에 있는 제대로 된 가죽 소파가 있는 응접실로 안내하려 했지만 소라는 그냥 여기도 상관없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랄프는 긴장하며 차가 든 캅을 테이블에 놓는다. 가능한한 좋은 음식과 예쁜 컵을 골라 온 것이지만 맘에 안드시면 어쩌지, 라고 랄프는 걱정해다.

하지만 소라는 평범하게 고맙다고 말할 뿐이었다. 랄프는 어색하게 소라의 맞은 편에 앉으며 사과했다.

"저기, 아까는 흉한 모습을 보여 드려서 죄송합니다. 기분이 상하셨나요?"
"아뇨, 안 그랬어요. 저야말로 갑자기 찾아와서 미안합니다"

랄프는 꽤 죄송스러워 했지만 소라는 딱히 신경쓰지 않는 것같았다. 서로 다시금 자기소개를 한 후 소라는 컵에 옅은 복숭아빛 입술을 대곤

"아……"

하고 소리를 내었다. 랄프는 움찔하며 당황하여 물었다.

"무, 뭐가 이상한가요? 입에 안맞습니까?"

소라는 천천히 맛보듯 차를 머금소 미소지었다.

"아니요, 이거 동방산 차군요. 저 좋아해요"

랄프는 그 웃음을 보고 잠시 정신이 빠졌다. 이렇게 가련한 미소를 여태껏 본 적이 있었을까. 그렇다 치고 다시금 가까이서 보니 같은 사람인 건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소녀이다. 만난 적은 없지만 뛰어난 용모를 지녔다는 엘프 이상이지 않을까, 라고 랄프는 생각했다. 그리고 사소한 동작 하나하나가 빠질 정도로 세련되었다. 이 소녀가 사용한다는 마으로 이 살짝 더러운 테이블이나 의자가 고급품으로 보이기에 신기할 따름이다. 랄프는 한 번 헛기침을 하고나서 슬금슬금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저에게 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습니다만"

소라도 컵을 컵받침 위에 놓고 정좌하고 나서 말했다.

"예. 이전에 제 조모인 클로에가 산에서 부상을 입었을 때에 경비대가 행한 현장검증을 상세하게 듣고싶습니다"
"클로에씨의?"

랄프는 녹색 눈을 깜빡였다. 손자인 소라가 신경쓰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현장검증에 대해서 자세히 듣고 싶다는 것이라면.

"여기서만 이야기하고 싶습니만……"

소라는 그 사선에 대해서 정말로 사고인지 의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단적으로 이야기했다.

"예에! 누군가 고의로 일으켰다는 겁니까!?"

랄프가 놀라서 큰소리가 나왔따.

"랄프씨, 목소리가 커요"

소라가 진정하라며 랄프를 나무랐다. 랄프는 '헉' 소리는 내곤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 누구나 그럼 놀랄 겁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합니까?"

랄프는 얌전해지고 소라에게 물었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지레짐작으로 그런 생각을 꺼낼 소녀로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할머니에게도 말했습니다만 아직 제 추측에 지나지않습니다. 만약 이게 자연스럽게 일어난 사고라면 제일 좋습니다. 하지만 만약에 이 사건이 누군가가 적의를 가지고 일으킨 거라면 저는 내버려 둘 수는 없습니다."

소라가 살짝 기합이 들어간 눈동자에 랄프는 약간 압도되었지만 마음을 다잡고 물었다.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정보를 모으고 있다, 라는 것입니까?"

소라는 끄덕였다.

"하지만 보통 이런 일이 누군가가 일으켰다고는 생각하지 않지요?"

진지해지는 랄프. 소라는 한 번 눈을 감고서 잠시 침묵하고 나서 말했다.

"그러네요.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고 정보만을 받으려 하는 것도 뻔뻔한 이야기겠죠. 제 생각을 이야기하겠습니다. 단 다른 사람에게 누설하지 말아 주세요. 다시 말하지만 지금은 제 추측일 뿐입니다."

소라가 곧게 랄프를 바라본다. 랄프도 꿀꺽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본 소라는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서쪽에 있는 동궁에서 모험자 몇몇 팀이 행방불명이 된 것을 아시죠?"

이야기가 갑자기 딴데로 갔기에 랄프는 살짝 당혹스러웠다.

"예, 뭐어. 모험자협회가 팀을 편성해서 탐색했다는 것은 이 마을에서도 소문이 자자했고 경비대도 살짝 협력했으니까요"

그 일은 유품 하나조차 찾지 못했기에 마을에서 살짝 미스터리한 일로 화제가 되었다. 그러나 던전같은 위험한 장소에서는 그다지 드룬 일도 아니기에 날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관심은 거의 사라졌다.

"그 동굴에서 모험자가 행방불명이 된 것과 할머니가 부상을 입은 것. 그것들은 관련이 있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 소라의 말을 듣고 랄프는 아연실색했다. 잠시 틈을 두고서

"잠,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어째서 그런 결론이 나온 겁니까!?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소라는 그런 랄프의 모습에 그것도 당연하다는 듯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나서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또 이야기가 바뀌어서 미안하지만 랄프는 마도사폐지주의란 것을 아시나요?"
"마도사……폐지……주의?"

여태껏 한 이야기와는 관계가 없어 보이는 단어에 랄프는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일단 말만은 알지만. 마도사폐절주의. 그 단어대로 마도사를 부정하고 마도와 그것에 관련된 기술을 폐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주의 및 주장을 말한다.

마도는 이 위대한 세계의 법칙을 부시는 행위이기에 신도 아닌 세계의 일부에 지나지 않은 사람이 멋대로 행사해도 되는 힘이 아니라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그 주장의 근간에 있는 것은 마도라는 특권에 대해서 불만이 아니냐는 말도 있지만.

"시작은 모험자로서 행방불명자의 유품을 회수하는 일를 맡은 게 계기였지만요. 그래서 엘시온에서 가능한 정보를 모았습니다만 어느날 기묘한 우연을 눈치챘기 때문이에요"
"기묘한 우연?"

랄프가 물었다.

"모험자가 행방불명이 된것은 요 1년 사이에 일어났어요. 그 동안 어느 동굴에 들어간 모험자팀은 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전부 14조. 그중에 행방불명된 팀은 5조예요. 그리고 행방불명된 팀에 있는 공통점은 팀 내에 마도사가 있다는 점이에요"
"……!"

전율하는 랄프를 보며 소라는 이야기를 지속한다.

"마도사인 모험가라는 것은 전체로 따지면 1할에서 2할정도죠. 그러기에 마도사가 소속된 팀의 수도 그렇게 많을 리가 없어요. 그러니까 그 팀들만이 동굴에서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은 의심스럽다고 생각되지 않나요?"

랄프가 새하얀 얼굴이 되며 혼잣말을 하듯 말한다.

"우연……이라고 하면 정리할 수 없겠죠"
"제 기우라면 좋겠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또 같은 일이 일어날지도 몰라요"

조용히 말하는 소라를 바라보고 랄프가 묻는다.

"즉, 마도사폐지주의자가 범인이라는 것인가요? 그렇다면 클로에씨를 노린 인물이 있다고 가정할 경우 이해는 됩니다만……"

클로에는 이 호슬링에서 틀림없이 가장 강한 마도사이다. 그것은 이 마을 사람이라면 누구든 알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 사람들이 범인이었다 해도 팀채로 행방불명이 되었죠? 그들을 전원 처리했다기라도 말하는 건가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할 것같지는 안듭니다만"
"2년 전 엘시온에서 일어난 테러사건은 아시죠?"

랄프는 소라의 말을 듣고 무심코 숨을 머금었다. '마도도시'라는 이명을 가진 에레미아국 수도인 엘시온. 이 세계에서 최대 규모의 도시이며 많은 마술사를 거느린 마도기술의 정수를 모인 대도시이다. 그 도시에서 2년 전에 마도사폐지주의자 중에서도 가장 과격한 테러조직인 '어비스'에 의해서 몇명이나 되는 사망자를 낸 사건이 일어난 것은 세상 사람이 아는 일이다.

"세계 제일의 마도사가 모인 도시. 그러니까 표적이 되기 쉬웠겠죠. 그러나, 그 몇십년 사이에 그정도 사건이 일어난 것은 처음이었어요. 도시 시큐리티가 그렇게 허술하지도 않을테고. 단 최근에는 마도사를 배제하기 위해서라면 수단을 가리지 않는 과격파가 대두된 겁니다. 2년 전 사건도 그들 '어비스'의 짓이었어요."

마도사폐지주의자가 일으킨 사건은 여기 에레미아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다소 차는 있더라도 세계 곳곳에서 늘여왔다. 소라는 여기서 한 모금만 목을 축이려는 듯이 차를 마셨다.

"랄프씨도 들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 2년전의 사건의 거의 되어가는 중에 저나 마리나가 얽히게 되었습니다. 해결할 수 있던 것은 여러 사람이 도운 것과 행운이 있었기 때문이었죠.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부상입었고 제 가족도 위험에 노출되었어요."

랄프는 살짝 눈을 내리깔고 이야기하는 소라를 보곤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원래 천재로 이름이 알려진 소라 에델베르크와 여동생인 마리나를 더욱 나라 안에서 사람들에게 알린 2년전의 테러 사건. 많은 요인이 그 테러리스트들에게 잡혔다고 들었다. 그 중에 소라의 가족도 있었겠지. 그러니까 소라와 마리나는 위험도 감수하고 그 사건에 개입하여 결과적으로 해결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번에 할머니인 클로에가 그 목표가 되었다고 한다면.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그녀들이 냅둘 수가 없지'

이 때 랄프의 열혈적인 영혼에 불이 붙었다. 거치적거릴 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들면서도 자신과는 관계없다고 딱 잘르는 짓은 랄프에게는 도저히 할 수 없었다. 랄프의 목표가 된 전사고 곤란한 사람을 지나치지라곤 하지 않을 터다.

"이야기는 알았습니다. 주제넘을지도 모르지만 그 조사에 저도 참여할 수 있을까요?"

랄프의 결의가 담긴 눈을 보고 소라는 놀랐다는 듯이 돌아봤다.

"하지만, 애매한 추측으로 경비대 사람을 데리고 갈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이건 내 치안을 지키는 경비대로서 가진 사명감도 있지만…… 랄프 메이야즈 개인으로서 가만 둘 수 없습니다. 거기다 이 근방 지형에는 훤히 아는데다 마을 내 사정같은 것도 제가 아는 정보와 맞춰서 다양한 협력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라는 진지한 표정이 된 랄프를 보다가

"어째서 이렇게나 힘을 빌려주시는 건가요? 당신에게는 아무런 이익도 없죠?"

그렇게 질문을 던졌다. 랄프는 어중간한 대답을 못한다고 직감적으로 알았다.

"옛날에 어느 사람이 괴물에게 습격당하던 때에 도와준 적이 있습니다. 그 이후에 저도 그 사람처럼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을 목표로 삼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아직 정말 미숙하지만 언젠가 반드시 그 사람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전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랄프는 그렇게 말을 끝낸 후 아무 말도 없는 소라를 보고는 깜짝 놀라

"아, 아니, 뭔가 쓸데없는 말도 해버려서 죄송합니다! 자신의 목표같은 건 상관없는데 말이죠!"

당황해 하는 모습을 더 보였다. 그것을 본 소라를 킥하고 미소짓곤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멋진 목표라고 생각해요. 거기다 클로에 할머님이 말한 대로 신용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클로에씨가요?"
"예, 성실하고 노력가에 정직한 사람이라고요"

그걸 들은 랄프는 뭐나 창피해져 얼굴이 살짝 빨개지고 잠자코 있었다. 소라는 도움의 손길을 주는 듯이 화제를 바꿨다.

"랄프씨는 그 도와준 사람을 존경하는 군요"
"예, 덮쳐온 괴물을 일격에 쓰러트린 대단한 전사입니다. 아니 정확하게는 무도가라고 이름을 대었으니 동방무술 사용자라고 말했습니다"
"동방무술?"

소라가 한쪽 눈쏙을 올렸다.

"저기 뭐가 있나요?"
"아뇨 실은 저도 동방무술에 살짝 소양을 가져서"
"예에!?" 랄프는 경악했다. 눈 앞의 가련한 소녀와 너무나도 이미지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도사가 체술을 습득했다는 건 좀처럼 들 은 적이 없다. 기껏해야 몸의 움직임이나 단순한 호신술정도겠지.

애초에 전투가 가능한 마도사는 귀중하다. 마도를 행사하기 위해서는 매우 높은 집중력이 필요하여 긴박한 전투 중에 마도를 짜며 싸우는 건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엄청난 센스가 있던지 상응하는 경험을 쌓아야만 가능하다. 모험가에 마도사가 적은 이유이며 마도와 근접전투 쌍방을 해내는 마도기사가 최고봉의 엘리트라 불리는 이유이다.

그렇기에 마도사가 단독으로 전투를 행하는 것은 평범하지 않다. 반드시 마도의 구책 중에는 방패가 될 전위역이 옆에 있어야 한다. 이것은 개인부터 국가 레벨의 마도전투에 있어서도 동일하다. 마도사를 수호하기 위해서 전위 후위 역할분담이 제대로 있는 현대에는 마도사는 후위로서 연계 중에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따위의 확인 정도로 본격적인 전투술을 배울 필요는 없다.

"이래뵈도 모험가로서 활동하고 있으니까요. 마도에 의지하기만 해서는 하지 못해요. 이상합니까?"

소라는 대담하게 미소짓는다.랄프도 처음에는 그 갭에 놀랐지만 눈 앞의 소녀라면 그다지 이상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명문가의 규수면서도 모험가로 활동하여 활동력이 왕성한 소녀라면.

"아뇨, 잘 생각하니 클로에씨의 손녀이기도 하니, 이해되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랄프도 처음에 긴장이 어느샌가 사라져서 자연스럽게 웃게 되었다. 잠시 둘이서 웃는다. 그리고 소라는 천천히 일어나선

"거기까지 말씀하면 꼭 힘을 빌려주세요. 지방에 정통한 사람이 협력해주면 분명히 든든하니까요. 랄프씨 잘 부탁드립니다. "

손을 내밀며 말했다.

"아…"

랄프는 얼빠진 소리를 내곤 그 눈처럼 새하얀 손을 멍하니 보다가 당황하여 일어섰다.

"아, 아뇨! 저야말로 발목을 잡지 않도록 노력할테니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광장에 울릴 정도로 큰 소리로 지르도록 말하고 멈칫멈칫하여 그 손을 잡았다. 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매끈매끈한 감촉과 은근하게 따듯한 체온에 얼굴이 뜨거워 진다. 쥔 후에 손바닥에 난 땀을 닦아뒀으면 좋았을텐데라고 랄프는 후회했지만 소라는 어째선지 온화한 웃음을 띄우고 다잡은 거였다.

'그건 그렇고 신기한 소녀야'

하고 랄프는 얼굴이 뜨거워지며 생각한다. 그 용모하며 스며 나오는 고귀한 분위기하며 언뜻보면 다가가기 어렵지만 이렇게 직접 이야기해보면 전혀 받는 인상이 다르다. 어떤 상대라도 극히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준다, 그런 깊은 도량을 느끼게 하는 상대였다. 처음에는 얼떨떨하게 긴장하던 랄프도 지금에서는 꽤나 평범하게 대화할 수 있다. 아니 허락해준다면 좀 더 이야기하고 싶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옆에서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그러고 보니, 이전에도 이런 인상을 가진 사람을 만난 느낌이 드는데'

라고 랄프는 생각했다.

애초에 좋은 의미로 규수답지 않았다. 이곳 호슬링은 그럭저럭 유명한 관광지이기에 명문가 사람이나 이웃나라의 귀족따위들도 때때로 방문하는 곳이다. 랄프도 몇번인가 그런 사람을 상대해봤다. 모두라곤 못하지만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응하는 사람이나 건방진 사람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에 악의에 상관없이 고귀한 사람은 그런 태도를 한다는 게 보통이라고 어느샌가 랄프의 이미지로 정착했었다.

그런데 소라는 랄프같은 말단 경비대원에게도 정중하게 이야기하고 자연스럽게 대한다. 이런 초라한 테이블이나 비싸다곤 말못할 음료따위도 그다지 신경쓰는 모습도 없었다. 거기다 랄프가 아는 젋은 여자아이들과도 달랐다. 만날때 랄프가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을 때도 소라는 당황하지 않고 자연스러웠고, 훈련후여서 땀냄새나는 랄프에게도 짜증난다는 표정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키우면 이런 아이가 되는 걸까……'

랄프가 그런 생각을 하고 이자 소라가 어째선지 랄프의 손부근을 보곤 물었다.

"이거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요? 꽤 아파보입니다만"

소라가 보던 건, 랄프의 손목에 있는 아파보이는 검게 변색된 멍이었다.

"아~ 이건 아까 훈련할 때 살짝 다쳐버린 겁니다. 그냥 괜찮습니다. 날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나을테니까요"

이 멍은 아까 잭이 난입했을 때 강렬하게 손목을 맞아서 생긴 거였다. 의식하면 지끈거리며 아프지만 랄프는 일부러 참았다. 소라는 잠시 고민하는 듯했지만,

"하지만 이 상처는 나을 때까지 영향이 나겠는데요"

그렇게 말하곤 소라는 '이건 도와주는 답례예요"라고 이으며 랄프의 멍에 손을 댔다. 랄프가 '엣'이라며 놀라는 것과 동시에 그 닿은 소란의 손이 은은한 푸른 빛을 방출했다. 그리고 그 포근한 빛이 랄프의 손목을 감싼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눈에 보이게 멍이 사라져 갔다. 빛이 사라진 후에 랄프가 손목을 가볍게 흔들어 봤지만 전혀 아프지 않았다.

"이건, 치유술이란 것이죠? 분명히 마도 중에서도 꽤 어렵다고 들었습니다만"

치유술은 미세한 섬세한 기술과 제어가 요구되는 마도이며 사용자도 한정된다. 섣불리 사용하려 하면 역으로 상처가 악화될 가능성도 있기에 마도사 자격과는 따로 치유술사 자격이 있을 정도다.

"일단 치유술사 자격은 가지고 있습니다. 어머니게는 이르지 않았지만요"

소라는 그렇게 말하고 미소지었다. 랄프는 살짝 뺨을 물들이면서도 감사인사를 말하려 하자 갑자기 소리가 끼어들었다.

"어이어이, 신입. 계집이랑 뭘 열심히 하는 거야?"

랄프는 갑자기 현실로 돌아와진 듯이 정신을 차리며 목소리가 들린 쪽을 돌아봤다.

잭이 짚이 감긴 목검을 어깨에 대곤 씰룩이며 숙사 뒷문에서 이쪽으로 다가왔다. 소라가 살짝 눈이 도끼눈이 되어 잭을 봤다. 잭은 그런 소라를 슬쩍 바라보곤 말했다.

"이런 이런, 에델베르크가문의 아씨아닙니까? 저번에는 무례한 태도를 보여 정말 죄송했습니다. 어차피 비천한 신분이여서 반성하고 있으니 무디 용서해 주십시요"

잭은 전혀 반성하지 않은 삐뚤어진 태도로 말했다.

"잭씨 실례를 하는 것도 정도가 있습니다!"

역시 랄프가 항의하지만 잭은 역으로 놀리듯이 말했다.

"너야말로 아까 그렇게나 내게 쳐맞은 주제에 팔자 한번 좋구나. 야? 그런 짬이 있으면 좀 더 훈련해야 하지 않냐? 그러니까 네는 날 한 번도 못 맞춘 거야"

잭의 그런 대사에 랄프는 분한 듯이 입술을 깨물고 얌전해 졌다. 잭은 랄프가 침묵한 것을 보고 한번 콧웃음을 날리고 다시 소라를 봤다.

그건 그렇고 아가님. 아무리 경비대 숙사라곤 하나 이런 남자들이 득실득실한 곳에 혼자서 오면 안됩니다만? 경계심이 부족한 거겠죠. 그렇지 모처럼 기회니 지금은 제가 호신술 하나를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실전형식으로 말야.

잭은 마치 뱀과 같이 눈이 매서워지며 도발하는 듯이 말했다. 랄프는 이 남자는 무슨 말을 꺼낸 거냐고 생각했다만 다음의 소라의 말에 아연실색되었다.

"그렇네요. 분명히 좋은 기회니 가르침 부탁드릴까요?"

"잠깐! 소라씨!? 무슨 생각입니까!"

랄프는 역시 거품을 물고 소라를 말리려 했다. 잭의 저 눈은 랄프를 등쳐먹을 때 보이는 잔인한 눈이다. 아니 좀더 어두운 무엇인가를 품은 기분조차 든다.

"됐으니까 신입은 빠져라. 아기님의 희망이니까. 거기에 제대로 봐줄테니까"

그래도 랄프는 말리려 했지만 소라는 랄프를 안심시키려는 듯한 웃음을 띄우고 말했다.

"괜찮으니까 보고 있어요"
"예?"

랄프는 그런 소라의 믿음직한 눈과 자세에 어째선지 강한 기시감을 느꼈다. 움직임을 멈춘 랄프를 지나치며, 소라는 잭과 광장의 정중앙으로 걸어갔다.

"당신은 그 무시를 사용하나요?"

소라는 잭이 든 목검을 보며 물었다.

"하, 설마~ 물론 맨손으로 지도하지"

잭은 아까까지 기분 나쁜 경어를 그만두고 목검을 광장 구석으로 던지고 양손을 주먹쥐고 가볍게 얼굴앞에 자리잡고 파이팅 포즈를 잡았다.

"그렇게 큰소리 쳐도 되겠어? 이제와서 후회해도 늦었는데? 말해두지만 마도를 사용하는 건 금지야"
"알고 있어요. 아무 문제도 없어요"

소라의 푸른 눈동자가 잭을 쳐다본다. 아무런 무서움도 후회도 느낄 수 없었다. 잭은 소라의 태도에 부화가 치미는 듯 더욱 눈매가 사나워졌지만 그래도 무모하게 다가가는 짓은 하지 않고 슬쩍 발로 간격을 좁히기 시작했다. 그것에 대응하여 소라 저벅저벅 평범하게 걸어서 잭과의 거리를 대담하게 줄였다.

랄프는 무심코 눈을 부릅떴다. 급속하게 거리를 줄여 가까이 오는 소라를 보고 잭도 허를 찔린 듯이 한순간 눈을 크게 떴지만 바로 흉악한 표정을 짓곤 기습을 하듯 단숨에 지면을 찼다.

"하! 바보녀석!"

잭은 그렇게 외치며 소라의 어깨죽지를 있는 힘껏 오른쪽 주먹으로 쳤다. 매우 적당히 봐준다고는 생각 못할 정도로 날카로운 공격이었다.

랄프가 '아앗!'라고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지근거리에 다가오는 주먹에 대해서도 소라는 전혀 움직이지조차 았았다. 그대로 걸음걸이로 슬쩍 몸을 왼쪽으로 열어 잭의 주먹을 손쉽게 흘렸다. 그리고 소라는 눈 앞에 있는 팔을 가볍게 잡아 그대로 잭의 기세를 이용하는 듯이 던졌다.

빙글하고 전방으로 회전하여 지면에 쳐박히는 잭.

"커흑!!"

잭은 허파에서 공기를 억지로 배출되는 듯한 소리를 질렀다. 간신히 낙법을 취한 것같지만 바닥은 다져진 흙으로 이뤄진 지면이다. 상당한 충격을 받은 게 분명했다.

소라는 통증과 충격으로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기절한 잭을 내려다보며 조용히 말했다.

"아무래도 당신에게 배울 필요는 없는 것같군요?"

소라의 말을 들은 잭은 증오의 눈길로 올려다보며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그리고 천천히 아까전에 던진 목검을 줍는다.

"재미있어. 그럼 이번에는 무기로 싸워보자고!"

핏줄이 선 눈으로 목섬을 쥔 잭. 굴욕과 분노로 제정신이 아닌 것같았다. 사태를 멍하니 지켜보던 랄프는 이번에야말로 제지해야겠다고 서둘러 발을 움직이려 했다.

그때.

"기다려"

갑자기 시원스런 목소리가 광장에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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