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다씨 차였어? 불쌍해~"

된장국을 한 입 먹고 사유는 왠지 남일인 듯 그렇게 말했다. 아니, 실제로 남일이지만. 얼릉 쫒아낼 요량이지만 어째선지 어제 일을 미주알고주알 묻고 나도 어째선지 솔직하게 말해버렸다.

"절대로 불쌍하다고 생각안하는 거지"
"생각해! 차이면 힘들지~ 차인 적 없지만"
"그러냐……"

종잡을 수 없는 대화를 하며 나는 사유가 만든 된장국을 마신다. 인스턴트가 아닌 된장국은 오랫만에 먹는 기분이 드는데 이상하게 맛있게 느껴진다. 딱 정당하게 짭짤하기도 하고 '누군가가 만들어준'이라는 사실이 어째선지 가슴에 와닿는다.

아~ 고토우씨가 만든 된장국이 먹고 싶었어.

"된장국 맛있어?" 된장국에 마음을 팔리고 있을 때 사유가 입을 열었다.

"어, 어~ 뭐"
"뭐야"
"맛있어. 그럭저럭"
"그럭저럭이라~"

사유는 큭큭 웃고 장난기 가극한 눈빛을 향한다.

"그~ 고토우씨? 가 만든 된장국을 먹고 싶어~ 같은 생각한 거지?"
"그런 생각 안했어"

마음이 들통난 건 같아서 조금 기분이 나빠진다. 사유에게서 슥 눈을 피하자 그녀는 다시 우습다는 듯 웃었다.

"정곡이었어? 정말 알기 쉽네"
"정말 성가신 JK네"

내가 대놓고 얼굴을 찌푸리자 사유는 그것조차도 재미있다고 말하듯이 큭큭 어깨가 흔들렸다. 아무래도 얘와 대화하면 가슴속이 근질근질거리는 것같은 간질간질거리는 것같은 잘 알 수 없는 기분이 든다. 대화 주도권이 완전히 그녀가 가지고 끌려간다. 여자에게 주도권을 빼긴 것은 썩 좋은 기분이 아니었다.

"있잖아 요시다씨"
"우악"

귓가에 갑자기 속삭여서 어깨가 놀라 움찔거렸다. 어느샌가 사유의 얼굴이 내 얼굴의 딱 옆에 있었다. 사유는 じりりと 내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댄다.

"내가 위로해줄까?"

숨이 섞이며 속삭여진 말. 온몸에 닭살이 돋는 걸 느꼈다.

"그러니까 그런 거 하지 말라고 말했지"

꾹 사유의 몸을 밀자 사유는 뾰루퉁해졌다.

"에이~ 솔직하지 않네~"
"바보야 난 너같은 연약한 여고생에게 위로받을 정도로 하찮은 사내 아냐"

내가 말하자 사유는 "에이~"라고 말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며 천천히 브레지어의 단추를 똑똑 벗기며 그것을 벗어 던졌다.

"나 꽤 가슴 크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말하고 가슴을 당당히 내민다. 셔츠 너머로 사유의 가슴이 내게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역시 이런 게 보이면 어쩔 수 없이 보게 되버린다. 남자니까.

"뭐, 뭐어 여고생치고는 클지도 모르겠지만…… 고토우씨는 더 대단해"
"하하하, 더 대단하구나"

사유는 큭큭 웃고 가슴을 내밀던 걸 그만두고 아까까지처럼 새우등 자세로 돌아간다.

"몇 컵 정도야?"

아무렇지도 않는 표정으로 그녀는 그런 걸 물었다.

"모, 모르지만 아마 F정도는 될 것같은데"
"F라면 나랑 같은데"
"뭐!? 너 그거 F나 되는 거냐!"
"응, 이것보다 크게 보이면 G나 H컵인 거 아닐까?"

H컵…… H컵이라니 얼마나 되는 거야? 그라비아 아이돌같은 컵수에 내 머리가 혼란해진다. 한 번이라도 좋으니까 그 H컵으로 감싸줬으면 좋았을텐데. 뭘 감싸는 지는 말 못한다.

"근데 말이야~"

사유가 입을 연다.

"만지지 못하는 H컵보다 만질 수 있는 F컵이 좋지 않아?"

그렇게 말하고 다시 가슴을 당당히 내밀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유. 자연히 한숨이 흘렀다.

"너 말이야, 그렇게 날 유혹해서 뭘 하고 싶은 거야. 정말로 덮치면 어떻게 할 건데?"
"응? 평범히 하는데. 요시다씨 꽤 잘생겼고 싫지 않아"
"나랑 하고 싶은 거냐?"

묻자 사유는 몇번 눈을 깜빡이고.

"아니 그닥 그런 건 아닌데"
"넌 대체 뭔데!!"

무심코 벌떡 일어섰다. 아까부터 행동이 너무 뒤죽박죽이여서 도저히 이해가 안된다.

"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 다가오지 말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덥치는 남자도 있다고"

내가 한 말에 사유는 눈썹을 찌푸리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반대로 묻겠는데"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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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앞에서 해도 된다고 하는 여자가 있는데 어째서 안 덮치는 거야?"
"뭐어……?"

한숨이라 하기도 의문부호라 하기도 할 수 없는 숨이 목에서 흐른다. 나이차만으로는 설명이 안되는 사고방식의 차이를 느낀다. 특이한 것을 보는 듯한 눈으로 사유를 보자 그녀는 쓴 웃음을 짓는다.

"어째서 그런 표정을 하는 거야? 평범하지 않은 건 요시다씨라니까. 지금까지 아무것도 요구하지도 않고 친절하게 묵게 해주는 사람따윈 없었어"
"……"

사유가 한 발언를 듣고 다음에 뭐라 말해야 할 지 모르게 되었다. 그녀가 지금 환경에 대해서는 고등학생 특유의 소박한 가출 비스무리한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 말투로 보면 몇개월은 자기 집에 안 간것은 아닐까? 거기다 그 동안 어떻게 잘 곳을 얻었는 지 대충 기분나쁜 상상이 되었다.

"으…… 넌 바보냐"

나는 중얼거리고 사유의 눈앞에 쭈그려 앉았다.

"네 어디에서 왔어?? 학생증 보여줘봐"

말하자 잠깐 사유의 표정이 흐려졌다. 그러나 그것도 아주 잠시. 사유는 방긋 웃고 치마 주머니에서 작은 지갑을 꺼내고 그 안에서 학생증을 꺼냈다. 받아 들고 그것을 본다.

"아, 아사히카와……"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사히카와 제 6고등학교 2학년'이라고 쓰여있었다.

"너 홋카이도에서 온 거냐? 혼자서?"
"언제 홋카이도에서 나온 거야"
"반년 전 정도려나"

반년동안이나 집에 안 돌아갔다고?

여기는 도쿄 한 가운데다. 고등학생이 혼자서 홋카이도에서 오기에는 지나치게 멀다.

"부모님에게는 제대로 말한 거야"
"안 말했지"
"바보 그럼 얼릉 돌아……"

거기까지 말하고 말이 끊겼다. 아까까지 헬레레 웃던 사유 표정이 노골적으로 흐렸기 때문이다. 어딘가 먼 곳을 보는 듯한 눈으로 사유는 말했다.

"아마 없어져서 만세를 부를테니까 괜찮아"
"그런 걸 너가 알 리 없잖아"
"알아"

그렇게 답한 사유의 눈에는 쓸쓸함과 체념이 뒤섞인 듯한 기색을 띄었다. 나는 살짝 가슴이 아파왔다.

"이제 나 돈 없어서 말이야. 잘해서 누군가의 집에서 지낼 수 밖에 없어. 그러니까"
"잘해서라니, 어떻게 잘해서?" "……"

사유는 입을 닫았다. 나는 누군가에게, 라고 할 것도 없이 짜증이 났다.

"바보처럼 하지마"

정신을 차리니 떠들고 있었다.

"지금까지 녀석들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나는 네 몸따윈 쌀 한 톨만큼도 흥미 없어"
"그럼……"
"집에도 돌아가기 싫어, 학교에도 안 갈 꺼라면 넨 뭘하고 살 껀데?"

내가 묻자 사유는 곤란한 듯이 어깨를 움츠렸다.

"그러니까 집에서 재워주는 사람을 찾아서……"
"내가 쫓아내면 어떻게 할 건데?"
"어, 어떻게든 다음 사람을 찾을 꺼야"
" 어떻게든이라니, 구체적으로 어떻게?"
"그건……"

내 말에 사유는 곤란하다는 듯이 말을 흐렸다. 어째서 모르는 거야. 평범한 사고라면 안이하게 모르는 남성을 유혹하려는 사고에 도달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만 아니, 여기까지 오면 이제 뭐가 '평범'한 건지 모르겠다.

나는 분노인지 슬픔인지도 알 수 없는 감정을 가슴속에서 반추하며 그것을 떨치려고 딱 잘라 말했다.

"일해"
"일하라고?"
"그래, 학교에서 떨어진 애들은 말이야. 모두 일해서 돈을 받아서 살아"
"그, 근데"

사유는 아까까지 잔뜩 여유있던 태도에서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작은 소리로 말한다.

"아르바이트 벌이정도론 보증금같은 건 못내"

뭐어 그건 확실히 그렇지. 애초에 집에서 지낼 수 있을 정도로 벌 때까지 걸릴 몇개월은 어디선가는 지내야만 하고, 몇 개월이나 노숙을 할 수는 없다.

"여기서 자면 되지"
"응?"
"지내도 된다고 말하는 거야"

내가 그렇게 말하자 사유는 못 믿겠어, 라는 듯이 눈을 계속 깜박였다.

"그, 그치만 나 요시다씨에게 아무것도 줄게 없는데"
"너가 가지고 있을 만한 것은 필요 없~다고. 시시해"

나는 얼굴을 찡그리고 말을 잇는다.

"돈이 없어! 잘 곳도 없어! 그럼 남자를 유혹하자! 같은 멍청함의 끝을 보여주는 네 머리속을 제대로 고쳐주지"
"아까부터 계속 바보 바보라고"
"바보지! 개바보지. 물건의 가치도 모르는 물러터진 놈"

꾹 말을 삼키는 사유. 정면에서 얼굴을 보니 역시 귀엽다. 어째서 내 안에서 그런 마음만이 빙글빙글 멤돈다. 제대로 청춘을 보내고 제대로 사랑을 하고 그렇게 살아갈 수 없는 걸까?

"지낼 곳이 없잖아"
"응"
"그럼 우리집에서 지내"
"으……응"
"그래서 우선은 이 집의 가삿일을 전부 해. 우선 그것이 일이야"

그렇게 말하자 사유는 놀란 듯이 눈이 휘둥그래졌다.

"알바하라고 말하는 줄 알았어"
"마지막에는 제대로 해야지. 하지만 지금은 나와 네 생활 페이스를 맞추는 게 먼저지. 멋대로 지내면 곤란해"

사유의 입이 뻐금뻐금거린다. 뭔가 말하고 싶은 것같기에 기다리자 겨우 사유가 말한다.

"계속 지내도 된다는 말투같은데"
"계속 지내는 건 곤란하지 가출이 질리면 후딱 돌아가"
"으……그때까지는 있어도 된다는 거야?"

그 질문에 어찌 답해야 할까 망설인다. 이 몇분간의 대화를 통해 알았지만 이녀석은 상당히 물러터졌다. 남자를 안이하게 유혹해 잘 곳을 빌리고 적당히 건너건너 다녔겠지. 그것보다는 수고스럽지만 더 건전하게 해결할 길도 있었을 터인데.

좋아하지도 않는 남자에게 색기를 사용하는 방법이 육체적으로 수고스러운 게것보다 괴로울 거라고 생각한다만 그런 감각은 그녀 안에서는 이미 옅어진 것같다.

'좋을 만큼 있어'라고 말해버리는 것은 정말로 몇 년씩 지내지 않을까하는 마음이 든다.

나는 말을 고르고 골라 겨우 입을 열었다.

"네, 물러터진 근성이 제대로 될 때까지는 있어도 돼"

그러자 사유는 어딘가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아, 알겠습니다……"

나는 후후 숨을 쉬고 또 마루에 고쳐 앉는다. 왠일인지 열성을 내버렸다. 다른 사람에게 설교할 정도로 제대로 된 사람이 아닌데 말이다.

테이블 위에 놓인 된장국이 든 그릇을 손에 들고 한 입 마신다.

"식어버렸잖아"

하지만 사유가 만든 된장국은 식어도 그럭저럭 맛있었다.

"아, 그렇지"

나는 갑자기 얼굴을 들어 사유를 봤다.

"오, 왜"

사유는 내게 눈을 돌린 채 되묻는다. 나는 사유에게 손가락질을 하고 말했다.

"다음에 날 안이하게 유혹하려 하면 바로 쫓아낼테니까 알겠어"
"이, 이젠 안한다니까……"

이렇게 26살 회사원과 가출 여고생의 기묘한 동거생활이 시작됐다. 허나 이 때의 나는 '여고생'과 생활을 같이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너무나도 얕보고 있었다.


수염을 깎다. 그리고 여고생을 줍다 분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