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 그만둡니다, 서민이 되겠습니다 66화

다메즈마 (토론 | 기여)님의 2018년 10월 20일 (토) 17:19 판 (새 문서: 연초, 인기척 적은 날에 왕립 도서관을 방문했을 때에는 석조 도서관 소리를 모두 흡수하는 듯하여 돌벽은 차가웠다. 하지만 오늘은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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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 인기척 적은 날에 왕립 도서관을 방문했을 때에는 석조 도서관 소리를 모두 흡수하는 듯하여 돌벽은 차가웠다. 하지만 오늘은 같은 도서관인데 돌로 이루어진 벽이 온기를 지닌 듯이 느껴진다. 날씨가 다른 탓만은 아니겠지. 내 마음이 달라진 게 크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그럴 것이 이전에 올 때보다 훨씬 도서관에 올 수 있던 게 즐겁기에.

건물에 들어가자 생각한 것보다 방문자는 적었다. 날씨가 좋기에 서민은 모두 세탁을 하러 가서나 밭일을 하러 가는 등 각자 일하고 있겠지. 자유로운 시간이 있는 책벌레만이 여기에 지금 있는다. 응, 짙은 책 냄새가 나는 건 좋네.

왕립도서관 안벽에는 여전히 그림이 잔뜩 장식되어서 그 일부가 바뀌어서 이번에도 나는 그림에 열중해 버렸다.

"인물화에 풍경화, 정물화, 여전히 다양한 그림이 장식되어 있어. 어떻게 하면 이런 터치로 풋을 쓸 수 있는 걸까. 그림을 고르는 기준이 있는 걸까… 저하에게 물어보고 싶어지네"

가깝게 가기도 떨어져 보기도 하며 그림을 감상하는 것은 나 혼자밖에 없다. 책을 읽을 시간이 줄어드니 신경쓰이는 그림 몇 점을 따라서만 감상하고 있다.

왕궁에도 복도나 계단에 잔뜩 그림이 장식되어 있지만 뚫어지게 보고있면 수상한 사람이라고 여겨진 듯 아직 못 감상하고 있다. 여기라면 어떻게 뭘 보든 괜찮지.

"부인, 무슨 좋은 그림이 있었습니까?"

어느샌가 등 뒤에서 내게 누군가 말을 걸었다. 이런 일을 할 사람은 딱 한 사람 짐작간다. 아마 이 사람일 거라고 상상하며 뒤돌아보자 역시 검은 머리에 하늘색 눈동자를 지닌 노와르백이 서있었다.

검은 머리 사발에 가지색 사무복을 입은 내가 누구진지 알 턱이 없다. 알려질 필요는 없다. 그러니까 거리를 벌려야 한다.

"멋진 그림이 잔뜩 있군요"

귀족이라기엔 쌀쌀만은 한마디만을 내뱉고 나는 애매한 미소를 지으며 입근처를 가리고 '오호호'거리며 그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아샤마리아를 아는 인물을 만나면 안된다.

등 돌린 내게 소리가 들렸다.

"오늘은 지리 분야 서가에는 안가는 겁니까? 레디 앤"

으~응? 진정, 진정하자... 아직 이름을 안 밝혔지. 마음에 소용돌이치는 의심을 가라앉히고 평정스런 가면을 얼굴에 쓰고 빙글 돌았다.

눈 앞에는 온화한 분위기를 두른 노와르백이 방긋 웃으며 서있을 뿐. 나는 깨달았다.

'이 사람도 루덴스저하의 친구들 중 한 명이구나'

'저하에게 오늘 당신이 여기 방문한다는 것을 들어서 말이죠. 다시 만날 수 있길 기대했어요. 실례합니다. 멋진 장식이네요. 미리 알지 못했다면 당신인 줄 몰랐겠어요."

부드럽게 노와르백은 실례하지 않는 선에서 거리를 유지하고 슥 내 전신을 살피고 확인했다. 그 눈동자는 날 나무라는 것도 타박하는 것도 아닌 사실을 확인할 뿐인 것이었다. 온화한 언행과 말투는 '이 사람은 적이 아니다'라고 나에게 충분히 이해시키는 것이었다. 그렇다 해도 저하의 지인이라는 시점에서 아군이라고도 할 수 없을 뿐이지만.

노와르백은 '왕도와 왕국 지도는 이미 준비해 뒀습니다'라고 나에게 알리고 귀족만이 들어갈 수 있는 장소로 나를 안내하여 간다.

'이럼 따라갈 수 밖에 없지'

스쳐지나가는 몇 명씩 있었는데 노와르백에게 가볍게 인사하고 지나간다. 평소부터 신분 상관없이 도서관에 오는 인물을 접하는 것같아 귀족이나 평민이나 인사를 해준다.

'모두가 호의를 가진 좋은 사람이구나. 하지만 저하의 친구지. 필요 이상으로 다가가는 건 위험하지'

이런 저런 것을 하는 사이에 귀족만이 들어갈 수 있는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노와르백과 같이 있는 덕분에 접수처에 신분증을 제시하지도 않고 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서가 옆에 있는 거다란 책상 위에 책 몇권과 커다란 면직 그물로 말려있는 용지가 놓여있다. 아무래도 저게 미리 준비해둔 물건같다. 면직 그물에 말려있는 용지를 펴 보자 그건 커다란 왕도 지도였다.

"예쁘다…"

왕궁과 주요한 건물은 그림으로 표시되어 있고 건물은 사각형으로 상위지도와 하위지도의 경계선은 두꺼운 검은 선으로 그려져있고 각 지도마다 색으로 나뉘어 있다. 지도 중심에는 왕궁으로 향하는 대로, 가지처럼 이어지는 도로, 혈관같은 지로로 자그만한 글자로 지명이 제대로 써있다. 가장 면적을 많이 차지한 건 물론 왕궁이다. 전궁(前宮)에 중궁(中宮), 후궁(後宮)은 세세하지 않게 그려져 있지만 그건 국방 문제 때문일까. 그리고 신경쓰이는 건 새까만 부분이 있다는 것. 도로까지는 그려져 있는 같지만 그 주위는 새까맣게 칠해져있다. 여긴 어디지…?

아~ 치안이 나쁘다는 슬램구역이라는 것이겠지.

나는 가지색 옷의 호주머니에서 미리 써둔 메모를 꺼내여 지명을 확인해갔다. 지명을 중얼거리며 지명을 찾고 있자 옆에서 노와르백이 보충하는 듯 어떤 토지인지 설명해간다. 흐음~ 노와르백은 박식하네요.

경비에 대한 용어집을 펴 내가 질문을 하자 노와르백은 더욱 장서를 가지고 와 설명해준다. 이 사람 평범한 사서 수준을 넘었어!

한 차례 수업같은 시간이 지나가자 나에게 있어 노와르백은 존경해야 할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 사람 사전같다.

'이렇게 공부한 것은 오랫만이네. 아~ 머리가 터질 것같아 하지만 똑똑해진 것같은데'

나는 목을 빙글빙글 돌리고 손으로 어깨를 꾹꾹 주무른다. 귀족 규수라면 이런 곳에서 하지 않은 행동이지만 지금 나는 '레디 앤'인 걸.

"알고 싶던 건 다 찾았습니까? 앞으로 내가 말한 것은 혼잣말예요. 필요없는 참견일지도 모릅니다만 괜찮다면 들어주세요."

불안한 듯한 물색 눈동자가 희미하게 흔들리는 듯 보였다. 노와르백은 말을 계속한다. 다행히 우리 이외에 주변에 사람은 없다. 주변에 있는 것은 오직 책 뿐.

나는 여디서 들을 수 있는 것을 바라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자연스럽게 몸을 꼿꼿히 세우고 앞으로 흘러나올 말에 귀을 기울였다.